함경도 함흥 북관, 호랑이 출몰이 잦아 피해 눈두덩이
천모호라는 범은 사람고기 맛을 봤는지 가축 안 잡아
관아에서 포수 수 십명을 동원했지만 범 피해는 여전
총 솜씨 좋은 김파총과 그 아들이 천모호 잡으러 나가
천모호 16발을 맞고 죽어, 알고 보니 한발 빗나가
호환으로 과부 되고 고아 된 백성들 범 고기 먹어
▲ 영화 대호에 나오는 호랑이. 1920년대 조선을 침략한 일본 군이 조선 범을 사냥하는 것을 그렸다.
유득공의 고운당필기에 털이 듬성듬성 난 범(호랑이) 이야기가 나온다. 함경남도 함흥에 한대유가 판관으로 나가 복무할 때 겪은 경험담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전한다.
때는 정조 13년, 서기 1789년과 정조 21년, 서기 1797년에 사이다.
털이 듬성듬성 난 포악하기로 악명높은 범[淺毛虎천모호]이 있었는데 얼마나 대단한지 백주에도 나타나서 가축이 있는데도 사람만 잡아먹었다.
포수 40여 명이 동원되어 잡으려 했지만 잡지 못했다. 함경도 북관은 집을 널빤지로 튼튼하게 짓는데도 이 천모호는 얼마나 힘이 센지 널빤지를 부수고 들어왔다가 널빤지에 이빨이 끼어서 부러졌다.
관청에는 이 범을 기필코 잡으라고 명령하였고 여러 마리를 잡았지만, 이빨 빠진 천모호는 아니었다.
북청부에 김파총이라는 이름난 포수가 있다고 하여 불러 포수 40명을 붙여서 천모호를 잡아 오라고 하였다. 15일이나 지났는데도 천모호를 보지 못했다고 할 뿐이었다. 그런데 천모호가 나타나 사람을 물었다는 보고는 날마다 올라왔다. 대략 죽거나 다친 사람을 헤아려 보니 400여 명이나 되었다. 김파총이 거느린 포수들이 거짓말하는 것밖에 안 되었다.
한대유가 성질나서 포수들을 잡아다가 곤장 30대씩을 때렸다. 김포수도 잡아다가 꾸짖으며 네가 400명을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며 더 세게 곤장을 쳤다.
그랬더니 김파총이 울면서 사정을 실토하였다. 자기는 총을 잘 쏘아 젊었을 때는 70마리까지 잡았지만 이번처럼 포악한 놈은 처음 본다며 비록 자기가 한번 천모호를 명중 시킨다고 해도 자기를 뒤이어 바로 총을 쏴줄 사람이 없어서 못 잡는다고 하였다. 이 말은 데리고 간 40명의 포수가 천모호가 나타나면 오줌을 지릴 만큼 겁에 질려 총을 못 쏜다는 것이다.
자기와 호흡이 잘 맞아 첫 발을 쏘면 이를 이어받아 총을 쏘아 줄 사람이 필요한데 여기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이러니 포수 400명이 있다고 한들 어디다 써먹겠냐고 하소연하면서, 비록 자기 아들이지만 총을 잘 쏘니 며칠 말미만 주면 아들과 함께 가서 그 천모호를 잡아 오겠다고 하였다.
이를 허락하였고 김포수는 아들과 함께 천모호를 잡으러 나갔다. 그래도 안심이 안 돼 포수 40명을 딸려 보냈다. 김포수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되니 필요 없다고 거절하였다. 그래도 40명이 따라가도록 하였다.
천모호가 있을 법한 숲속으로 들어가 푸른 풀로 위장하고 납작 엎드린 채, 범이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따라온 40명 포수에게는 모두 나무에 올라가 구경만 하도록 하였다.
얼마 후 천모호를 발견하였고 김 포수가 첫 발을 쏘았다. 명중이다. 천모호는 총소리가 난 곳을 뛰어들었고 곧 그 아들이 연사하였다. 30여 분 동안 이렇게 반복하였다. 모두 16발을 맞은 다음에야 천모호가 죽었다. 나무 위에서 구경하던 포수들이 다리가 후들거리고 정신 나가 있다가 그제서야 내려와 천모호를 떠메고 고을로 돌아갔다.
나중에 범의 몸을 해체해 보니 15발만 보였다. 한발이 빗나간 것이다. 호환을 당해 남편이 죽은 과부와 고아들이 몰려들어 고기를 씹어 먹었다. 김포수의 공을 인정하여 4만 냥을 주었지만 사양하고 돌아갔다.
고을 사람들이 소를 잡아 전송하였다. 죽은 천모호는 암컷이었는데 새끼 세 마리를 데리고 다녔다. 고을 사람들은 새끼 3마리도 때려잡았다. 잡고 보니 새끼들도 털이 듬성듬성하였다.
이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서기 18세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소위 백두산 호랑이가 일상적으로 눈에 띌 정도로 개체수가 많았다는 것이다. 흔히 호환이라고 하는데 호랑이에게 본 피해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총 15발을 맞은 뒤에야 죽었을 정도로 힘이 세고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백두산 호랑이들이 이제는 멸종위기에 처하였고 시베리아 숲속에서 겨우 명맥만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들어서 개체수가 늘어났다고 하고 자기 고향인 한 땅으로 개체수가 많이 늘어난 멧돼지나 고라니 먹이를 찾아내려고 있다는 보고도 더러 있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