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16국 중국 북방왕조는 고구려 고씨 천하

북방왕조 시조 탄생 설화 핵심, 고구려와 닮아

고구려 고씨, 동이족 신농씨 고양씨에 닿아

▲이덕일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가 '고구려사 신연구' 발표회에서 중국 북방왕조 상당수가 고구려계 고씨들이 세웠음을 밝혔다.

우리는 흔히 수나라, 당나라가 들어서기 전 황하 북쪽 대륙의 역사를 5호 16국 시대라고 한다. 통상 수나라가 중원대륙을 통일하기 전 북위 시대(서기 386~534)까지 포함한다. 중원의 한족이 아닌 북방초원 유목계열의 민족이 중원의 황하 이북에 세운 왕조들을 말한다. 이 왕조에는 북제, 북연, 북위가 있다.

북위와 관련해서는 백제 동성태왕이 서기 490년에 수십만으로 백제영토를 침략해오는 북위 군대를 대파한 기록이 남제서 백제전에 나온다. 북위를 이은 수나라,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한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이런 기록 등으로 중국 북방왕조 나라들은 우리와 상관없는 중국왕조이고 중국 역사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들 중국 북방왕조들 상당 부분이 고구려 고씨들이 세웠거나 장악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앞서 언급한 북제, 북연, 북위가 대표 왕조들이다.

서기 2025.05.02. 서울 성북구에 있는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바른역사학술원이 개최한 학술발표회에서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날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동방문화대학원 대학교 이덕일 교수는 북제서와 삼국사기 등 1차 사료를 근거로 고구려 고씨와 발해고씨가 중국왕조로 알려진 북제, 북연, 북위 왕조를 세웠거나 장악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 왕조들을 발해고씨와 고구려 고씨가 세웠음을 탄생설화 금석문과 중국과 한국 자료를 바탕으로 증명하였다.

▲고구려 고씨와 발해고시씨가 세운 북제 위치도. 자료: 바른역사학술원 발표회 자료 발췌.


먼저 산동성에 위치하였던 북제를 개국한 문선제 고양이 탄생하게 된 설화를 보자. 북제서 문선제 본기에 이렇게 나온다. “(문선제가) 처음 잉태되었을 때 매일 밤 붉은빛이 실내를 비추니 황후가 일찍이 괴이하게 여겼다.” 또 북송 시대의 태평어람에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누태후가 처음 문선제를 잉태했을 때 매일 밤 붉은빛이 방을 비췄는데 몇 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북위 정권을 장악한 북위의 세종 선무제 탄생설화도 같은 맥락이다. 서기 1946년 중국 하남성 맹진현 관장촌에서 나온 위문소황태후산릉지명이라는 비문에 나온다. “태후가 어릴 때 꿈에서 당내에 서 있는데 햇빛이 창문으로 들어와 비췄다. 햇빛이 밝고 뜨거워서 태후가 동쪽으로 서쪽으로 피했어도 햇빛은 오히려 따라와 비추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같은 햇빛감응설화는 고구려 시조 고추모(주몽) 탄생설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화부인이 방안에 있는데 창문을 통해서 빛이 들어와 유화부인이 피해도 계속 따라와 비췄다고 하였다. 유화부인은 알을 낳았고 알에서 고추모가 태어났다. 알만 달랐지, 햇빛의 감응으로 태어났다는 점에서 같다.

북제와 북위의 시조탄생설화가 고구려와 같다는 것은 이 왕조들이 직간접적으로 고구려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더구나 이들 왕조의 시조가 고씨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중국 북제서에 북제를 건국한 인물들이 고구려 고씨 계열로 나와있다. 자료: 바른역사학술원 발표회 자료 발췌.

북연은 서기 407년 고운이 세운 나라다. 고운은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광개토태왕 17년 조에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나온다. “(광개토태왕은) 17년(서기 408) 봄 3월에 사신을 북연에 보내 종족의 예를 베풀자 북연왕 고운이 시어사 이발을 보내 답례하였다.” 고운에 대하여 북송의 사마광이 쓴 자치통감에도 “고운은 고구려 지파에 속한다.”라고 하였다.

이덕일 교수는 북연과 북위의 주인인 고씨들이 한때 고구려에 거주하였던 점, 고구려를 모국으로 여겼던 점을 들어 이 같은 사실을 굳혔다. 이에 더하여 중국사를 동이족의 역사로 포괄하면서 발해 고씨와 고구려 고씨를 동이족으로 밝혀진 황제헌원의 후손인 전욱고양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전욱고양의 고양이 5호 16국 중국 북방왕조로 알려진 북제, 북연, 북위에서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이전의 신농씨의 후예 강상으로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마디로 중국사는 대부분 동이족의 역사이고 결국 우리의 방계역사라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하기야 일제치하 초기 대일 독립전쟁의 대부로 알려진, 석주 이상룡이 설립한 신흥무관학교 교가 1절에도 중국사가 우리의 방계역사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서북으로 흑룡태원 남의영절에 여러만만 헌원자손 업어 기르고” 여기서 헌원은 중국역사 시조로 알려진 황제헌원을 뜻한다.

중국 민족을 "업어 길렀다"는 얘기는 중국이 우리에게서 가지 쳐 나간 족속이라는 이야기다. 이 가사에는 “동해 섬 중 어린 것들 젖 먹여 길렀다.”는 것도 나오는데 "어린 것들"은 일본을 말하며 "젖 먹여 길렀다"는 직계자손, 곧 우리의 직계역사라는 말이다.

이를 통해서도 “업어 길렀다”는 말에서 중국 역사는 우리 방계 역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금석문 시조 탄생설화를 통해서 고구려 계통의 고씨가 북방왕조를 세웠음을 증명하고 있다. 자료: 바른역사학술원 발표회 자료 발췌

이외에 이날 발표회에서 특기할 내용은 박종민 박사의 고구려 초기도읍지 주장이다. 만주에 있는 오녀산성이 고구려 초기도읍지인 졸본이라는 통설을 깨고 현재 요하 서쪽 요녕성 조양시 인근의 의무려산 일대라는 사실을 밝혔다. 고려사 지리지를 기본으로 요사 등을 활용하여 고증하였다.

이는 고구려 강역이 중원대륙까지 뻗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의무려산일대가 고구려 중심지가 되고 사방으로 강역이 펼쳐져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준을 들이대면 고구려 서쪽 국경선은 최소한 현재 중국 하북성 란하까지 이른다.

이날 발표회에서는 이외에 김주인 역사주권 이사장이 “고대한일관계의 숨겨진 역사왜곡 실상”을 주제로 발표하였고 이어 정택선 군산대 명예교수가 “고구려 압록강, 고려 의주, 흥화진, 위원진, 정주, 영덕, 영삭, 정융의 위치 및 고구려 수도 국내성 위치 고찰”을 통하여 고려 강역 확장을 시도하였다.

이어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가 “광개토대왕비문과 일본서기의 천하”를 주제로 고구려 천하관과 일본의 천하관을 비교하여 결국 각자 천하관을 내세우고 있다면서도 일본 천하관은 고구려, 백제의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하였다.

한편 이날 발표회는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가 후원하고 임형진 경희대 교수가 이끄는 가운데 단출하게 치르려고 했음에도 발표 책자가 조기에 동이 나고 제한된 발표회장이 학자와 시민들로 꽉 찰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학술회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