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 신화, 지상·천상·지하세계 3구조로 형성

기존 정치와 종교 질서가 버린 민중 보호 구조

신과 민중을 이어주는 무당은 굿으로 민중 위로

삼승 할망은 지배계급과 상생, 공생 조화 모색

▲삼승할망이 우리 고유 문화 신단수아래서 위로는 오봉과 일월의 유교적 요소를 이고 치마에는 불교 동자승을 품고 있다(편집인 주). 자료: 이기상


신화 풀이: 삼신 할매에서 읽어내는 ‘삶의 지혜’

이 신화는 한반도의 모든 민중에게 고루 퍼져 있는 ‘민간신앙’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문자로 된 책이 아니라 구전으로 전해져오는 ‘설화’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해 무당들의 서사무가로 전승되어 오는 ‘민간신화’이다. 이 신화가 전개되고 있는 세계는 ‘삼신’이라는 말에서 암시되듯이 ‘세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즉 ‘지상세계’, ‘천상세계’ 그리고 ‘지하세계’가 이 이야기의 주된 무대다.

‘삼승 할망’이라 불리지만 정작 두 삼승 할망은 할머니가 아닌 ‘처녀’, 즉 ‘따님아기’다. 지상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온 따님아기들이다. 이 두 처녀는 삼승 할망 직을 놓고 다툰다. 지상세계의 할머니 역할을 서로 하고 싶어 한다.

민중 삶의 세계를 유지시켜 주는 신이 ‘삼신 할매’라고 지칭되는 데에는 그 구원과 희망의 방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암시한다. 다른 어떤 것이 아닌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함을 드러내고 있다. 민중에게는 가족만이 구원이고 희망이다. 가족적인 세계가 본으로 제시되고 있다.

다른 세계에서 지상세계의 삶의 질서에 편입 또는 개입해 들어오는 삼신 할망은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지 않고 오히려 여러 가지로 도와준다. 생명을 점지해주고 낳게 해주고 병 없이 자라게 해준다. 그것은 지상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살림살이이다. 삼신 할매의 도움 없이도 생명의 잉태와 출산 그리고 보육은 펼쳐져 왔다.

그러나 삼신 할매의 도움이 없다면 생명의 잉태도 힘들 것이고 출산은 더욱 힘들어 많은 산모와 아기들이 죽을 것이다. 출산에서 살아났다 해도 온갖 병에 시달려 15살을 넘기기 전에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는 여기서 삼신 할매가 도와주는 세상과 그렇지 못한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우리는 삼신 할매 신화가 무당들의 굿풀이인 ‘서사무가’인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의 생활세계에서 무당이 하는 역할이 삼신 할매로 ‘상징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달리 말해 무당이 없는 민중들의 삶의 세계는 가장 기본적인 생명의 잉태와 출산마저 보존되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이다.

기존 정치질서와 종교제의 속에서 ‘민중이’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나라는 양반들이 다스리고 민중들은 지배체제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노예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그들은 종교에서조차 위안을 받을 수 없었다. 유교․불교․도교[선교]가 있지만 그 모든 경전이 한문으로 되어 있어 민중들에게는 초월자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는 통로가 없었다.

무당과 삼신 할매는 바로 민중들이 신에게 필요한 것을 부탁하여 얻을 수 있는 중개자이고 매개자이다. 무당은 민중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민중의 말로 신에게 청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문화’가 ‘지배문화’와 ‘기층문화’로 나뉘어 서로 다른 문화적 전통을 유지해오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왕족과 귀족, 양반과 선비로 대변되는 ‘지배문화’와 그들의 학문[유학·불학·도학]과 종교[유교·불교·도교]는 한문을 중심으로 문자문화화 하여 한문을 모르는 서민과 민중을 철저히 그 문화에서 소외시켰다.

글[한문]을 모르는 민중들은 어쩔 수 없이 나름의 생존방식을 터득해야 했다. 그들은 구술문화를 방법으로 삼아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문화를 만들어나갔다. 그것이 곧 민속문화로서 ‘무속’이고 ‘무교’고 ‘굿문화’이다.

서민들은 기존의 지배질서를 깨뜨리거나 혼란시키지 않은 채 나름의 생활세계를 만들어야 했다. 그것이 여기에서 삼신 할망의 신화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민중은 기존의 정치체계, 학문체계, 종교의례를 인정한 가운데 거기에 그들만의 독특한 살림의 문화를 조화롭게 끼워 넣는 삶의 지혜를 발휘했다.

민중들의 ‘삶의 지혜’는 고난과 갈등을 정면으로 맞서 대결하여 복수해서 적극적으로 극복해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안으로는 삭이고 밖으로는 나도 살고 너도 사는 ‘서로-살림[상생]’의 방식으로 해결해나가는 길을 택한다. 그것이 삼신 할매 신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러기에 이 신화에서의 갈등 해결방식은 “대립-갈등-극복”의 구도가 아니라 “대립-갈등-화해[또는 조화]”의 방식으로 전개되어 나간다.

▲흙은 빚은 삼승할망. 아래 양쪽에 닭이 삼승할망을 호위하고 있다. 닭은 새로써 한웅천왕으로 볼수 있다. 삼승할망이 오른쪽 손에는 연꽃으로 보이는 물건을 들고 있고 왼쪽에는 물병으로 보이는 항아리를 들고 있다. 불교와 도교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편집인 주). 자료: 이기상


동해용왕 따님아기가 온갖 죄를 지으며 악하게 사니까 용왕[아버지: 남성성]은 자기 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치원칙에 입각해 중벌을 내려 죽이려고 결심한다. 그런데 아기의 어머니[여성성]는 그런 ‘인과응보적 해결방법’이 아닌 다른 ‘조화와 화해의 방법’을 제시한다.

지상세계에 생명을 관장하는 삼승할망으로 보내자고 제안한다. 죄를 속죄할 수 있는 다른 적극적인 화해와 조화의 길을 제안한 것이다. 삼승할망 자리를 놓고 동해용왕 따님아기와 명진국 따님아기가 다툴 때도 그 해결책은 어느 한 쪽이 완전히 패배하여 죽어 사라지는 해결방법이 아닌 ‘꽃가꾸기 내기’가 제안된다.

그 내기 자체가 일종의 ‘살림경쟁’임이 민중들의 살림살이 태도를 반영하고 있으며, 내기에 진 사람이라고 해서 목숨을 잃거나 어디로 축출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삼승할망 직을 나누어 가져 다른 방식의 ‘더불어-삶[공생]’의 방법으로 조화롭게 해결된다.

<당금아기 이야기>에는 ‘민중의 정체성 찾기’의 한 면이 드러나고 민중들의 삶 속에 삼신 할매가 차지하는 위치가 표현된다. 처녀인 당금아기는 ‘세 아들’을 낳는다. 이것은 서민들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따라야 하는 기존의 정치질서, 학문체계 그리고 종교제의를 상징화한다고 풀이할 수 있다.

또는 한국문화에 깊이 뿌리내려 한국인의 정체성을 형성한 유교, 불교 그리고 도교를 상징한다고 할 수도 있다. 당금아기를 꼬여 임신을 하게 만든 시주승이 다른 나라에서 온 중으로서 임신만 시키고 사라져 버리기에, 그의 세 아들들은 애비 없는 자식으로 클 수밖에 없었다.

민중들이 믿고 따르는 세 종교가 외국에서 온 것처럼. 민중들의 삶에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하는 그 종교들은 애비 없는 자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당금아기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아버지를 찾아 길을 떠난다.

어려운 시련과 시험을 통과해서 세 아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획득한다. 첫째는 문수보살이 되고, 둘째는 사해용왕이 되고, 셋째는 골매기 성황이 된다. 수입된 신이 아닌 이 땅의 신들이 된다.

무속에서 섬기는 만신들이 곧 우리가 섬겨야 할 우리의 신들이다. 당금아기는 최고의 신인 ‘석가 삼안 세존 삼신 할매’가 된다.

[삼신이 된 당금 아가씨에게 부여되는 이렇게 길고 복잡한 명칭은 생명의 주재자가 단순한 할머니가 아니라, 우주를 주재하는 최고의 존재임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명칭에는 불교 용어와 민중종교 용어, 남자 이름과 여자 이름이 혼합되어 있다. 명칭상의 혼란을 좀더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한국 무교에서도 역시 다른 종교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성을 일상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종교언어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로 삼을 수 있다. 참조 박일영, 앞의 글.]

그림: 김봉준의 <숲 이야기> 15, 권수정의 <당금애기>, 박생광의 <무당 국사당>

(2025.05.26.)

▲국사당의 삼승할망. 고깔을 쓴 불교 승려들이 그려져 있다. 자료: 이기상

출처: https://www.facebook.com/kisang.lee.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