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골장 풍습은 신석기 시대까지 올라가는 오래된 것

삼국지 동옥저전에도 임시매장 후 뼈를 추려 곽 안치

함경도 북관 사람에게서 세골장 풍습 흔적 나타나

▲ 경북 울진 후포리에서 발굴된 세골장 무덤. ​​​​​​​사진출처:  https://www.cultureline.kr/coding/sub1/sub1_view.asp?mode=view&aseq=9733
▲ 경북 울진 후포리에서 발굴된 세골장 무덤. 사진출처:  https://www.cultureline.kr/coding/sub1/sub1_view.asp?mode=view&aseq=9733

오늘날 우리나라 장례 풍습은 시신이나 화장을 한 시신 가루를 땅에 묻는 매장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신석기 시대 강원도 동해안 지역을 따라 나타나는 장례 풍습은 다르다. 1차로 살이 모두 썩어서 떨어져 나갈 때까지 별도의 공간에 임시매장 해 놓았다가 뼈만 남으면 추려서 2차로 매장한다.

뼈를 깨끗하게 씻어서 장례를 치른다고 하여 세골장(洗骨葬)이라고 부른다. 두 번 장례를 한다고 하여 2차장이라고도 한다.

경북 울진 후포리 무덤이 세골장을 한 대표 사례인데 뼈를 구덩이에 내려놓고 장대석 돌도끼를 올려놓은 것으로 보아 이 무덤은 최소한 신석기 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무덤에는 40구의 시신이 묻혀 있었다.

중국 삼국지 위서에는 동옥저의 장례 풍습을 전하고 있는데 사람이 죽으면 커다란 곽을 만들어 한쪽을 터놓는다. 새로 시신이 생기면 임시로 매장해 놨다가 피부와 살이 다 없어지면 뼈를 취해서 곽 안에 안치한다. 가족 모두 하나의 곽에 들어간다(其葬作大木槨長十餘丈開一頭作戶新死者皆假埋之才使覆形皮肉盡乃取骨置槨中擧家皆共一槨).

동옥저의 장례 풍습도 세골장을 한 것으로 나타난다. 후포리나 동옥저나 모두 무덤에 한 구 이상의 시신을 넣는 것이 같다. 이로 보아 동옥저 세골장은 신석기 시대부터 내려오는 장례 풍습으로 추정된다.

▲ 시신의 뼈를 추려 매장한 후 돌도끼로 덮었다. ​​​​​​​사진출처: ttps://www.cultureline.kr/coding/sub1/sub1_view.asp?mode=view&aseq=9733
▲ 시신의 뼈를 추려 매장한 후 돌도끼로 덮었다. 사진출처: ttps://www.cultureline.kr/coding/sub1/sub1_view.asp?mode=view&aseq=9733

이러한 장례 풍습은 서기 18세기 후반 함경도에도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발해고를 쓴 것으로 유명한 역사학자 유득공이 자신의 고운당필기에 함경도 북관 사람이 자기 처가 병들어 죽자 처의 몸을 세 토막으로 잘랐는데 현에서 이를 알고 왜 그리했는지 문초하였다.

그 사람이 말하길 살을 버리고 뼈만 거두어 고향으로 돌아가 장사 지내려고 하였고 이는 북쪽 풍속이 옛날부터 그러하였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다.

원문을 보면 아래와 같다.

[하양 현감을 지낸 임희택이 해준 말이다. 그가 하양을 다스릴 때 산골에 살던 어떤 자가 여인을 세 토막으로 자른 일이 있었다.

군교들이 결박해 와 보고 하기에 당장 달려가서 검시하였다. 피가 흥건하고 살점이 문드러졌는데, 주척(周尺)으로 창자를 재었더니 42자였다.

형을 가하며 신문하였더니 흉악한 짓을 한 사람은 바로 북관 사람이었다. 그가 공초에서 말하였다.

“아내를 이끌고 떠돌이로 지냈는데 불행히도 병으로 죽었습니다. 살을 버리고 뼈만 거두어 고향으로 돌아가 장사 지내려고 했습니다. 북쪽 풍속이 예로부터 이러한데, 큰 죄가 되는 줄 진작 알았다면 어찌 꼭 이렇게 했겠습니까.”

복검 때의 공초도 전과 같았으며, 결국 형장을 맞다 죽었다.]

북관 사람은 처의 시신을 처리하는 방식이 그 지방 풍습이라서 죄가 안 되는 줄 알았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면서 죄가 될 줄 알았다더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냐고 항변하였다.

그런데도 형리들은 그를 형장으로 때려죽였다고 한다.

사람의 시신을 훼손하는 것은 당시 성리학적 유교 질서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성리학 체제에 어긋나는 부도덕한 행위였기 때문에 그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북관 사람의 행위를 지금 법리를 적용해 보면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범죄구성요건 중 주관적 구성요건인 범죄라는 인식, 곧 고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세골장 풍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마도 유교 성리학 5백 년 동안 유교 기준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없애 버렸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 경북 울진 후포리 세골장 무덤에서 나온 신석기 시대 돌도끼. ​​​​​​​사진 출처 : https://www.cultureline.kr/coding/sub1/sub1_view.asp?mode=view&aseq=9733
▲ 경북 울진 후포리 세골장 무덤에서 나온 신석기 시대 돌도끼.
​​​사진 출처 : https://www.cultureline.kr/coding/sub1/sub1_view.asp?mode=view&aseq=9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