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정락(미학자)
엽전이라 부르는 상평통보 인조 때 주조
조선에서 화폐, 통화 기능은 3%선 그쳐
상평, 상시평준으로 물가 안정 염원 담겨
상평통보 둥근 원에 안에 네모, 천지 상징
첨성대도 둥근 몸체에 사각형 머리로 같아
▲조선시대 대표 화폐인 상평통보.
<常平通寶>
우리가 엽전이라 부르는 대표적인 조선시대 동전이 ‘상평통보(常平通寶)’다.
인조 때, 1622년에 최초로 시험 삼아 주조되었고, 숙종 때에 유통되었다. 자본주의의 맹아적 현상으로 보기도 하지만, 상평통보의 유통은 제한적이었고, 조선실록에 기록된 주화에 대한 논쟁은 언제나 부정적이었다.
당시 총생산에 비례하여 통화는 약 3%정도만 거래에 사용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아무튼 상평통보는 조선통보와 십전통보와 함께 오래 동안 화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서는 그 경제적 가치나 역할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겠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조선시대 동전이 갖는 형태와 명칭이 지닌 의미다. 미술의 관심은 이런 것들에 몰두한다.
우선 동전의 이름이 갖는 철학과 세계관이 반영하는 것부터 살펴보자. 常平은 “常時平準”의 준말이다.
언제나 동일한 가치를 유지하겠다는 등가의 원칙은 물가안정에 대한 희구가 바닥에 깔려 있다.
동전이 처음 만들어졌던 인조 시기는 두 차례의 왜란과 정묘호란을 겪은 후이니, 나라의 경제상황은 상당히 침체했을 것이고, 부족한 생산은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불러왔을 것이다.
이런 난황을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 화폐의 발행이었지만, 상업의 낙후와 농경의 오랜 관습은 화폐의 효과를 누르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므로 이 명칭은 기대감의 표명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동전의 형태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원형으로 만들어졌다. 민 테두리 속에 글자를 사방에 박아 넣고 가운데는 네모난 구멍을 뚫어 놓았다.
일반적으로 구멍은 단순히 동전을 끈으로 엮기 위한 실용적 방편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방편을 앞서는 철학이 이 디자인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동양에서는 아주 오래 동안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기호를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예컨대 하늘은 둥글고, 땅은 각지다.
이 단초를 발전시켜서 사각형태는 땅, 원은 하늘이라 보았다. 이런 세계관은 신라시대 첨성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첨성대는 부드럽게 오목한 원통형 몸을 가졌고, 그것은 하늘 혹은 천체를 의미한다.
그리고 기단과 상부의 우물 정자와 같은 구조는 땅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그런 맥락에서 첨성대는 오늘날 천문대라기보다는 천문대 입구에 장식된 일종의 기념조형물이었다고 정의하는 편이 올바르다.
첨성대처럼 대한제국시대에 만들어진 원구단도 원형의 평면구조로 지어졌다. 이 원형은 하늘을 의미하며, 중국의 천자들이 하늘의 아들로서 제사를 지내던 제단을 가져와 독립된 나라의 독립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나아가 창덕궁 후원(=비원)의 옥류천 정자도 이와 같은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네모난 마당을 논으로 삼았고, 그 안에 원형의 초가정자를 세운 것은 - 비록 규모도 작고 초가라는 소박한 형식을 띠고 있지만 -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유교사회의 우주관을 현시해 주는 증거다.
그러니까 상평통보는 단순한 교환수단으로서의 화폐가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의 인간들의 삶과 경제를 고르고 넓게 펼치려했던 조선의 정치이념의 상징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결과는 기대에 한참이나 못 미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