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외국인 노동자 2백만 시대, 그들의 세상 눈앞
전남, 강원 지방에서는 이미 외국인 이민 실천 중
외국인 이민으로 나라 고유성, 다양성 소멸 획일화
획일화로 국제 자본주의 세력의 인류 통제 지배
지역 공동체 붕괴 가속과 저임금 노동의 고착화
▲외국인 노동자가 남한 경제 기층을 장악하고 있다. 자료: 제미니 생성 갈무리
충남 아산시가 드디어 도시 인구 10%를 외국인노동자(외노자)에게 내주었다. 전체인구 40여만명에서 4만여명이 외노자라는 것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방도시 중 인구가 늘었다고 자랑하지만 실상은 외노자가 늘어난 것에 불과하였다.
로무현이 이전까지는 외노자 수입이 천단위로 되어있던 것을 로무현이 갑자기 만 단위로 허가하는 바람에 서기2025년 현재 외노자 150만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서기2025년 현재 전남 광주광역시 인구가 140만명이 안 되는데 광주광역시 인구를 훨씬 웃도는 외노자가 들어와 있다.
이것은 공식적인 통계이고 불법체류 외노자를 포함한 것이 아니다. 불법체류 외노자가 전체 외노자 수의 절반에 해당한다는 연구도 있다. 법무부는 서기 2025년 5월 기준 불법체류 외노자가 38만여명에 달한다고 하였다. 이는 공식통계에 불과하다. 비공식 불법체류 외노자는 앞선 연구에서 보듯이 공식 외노자의 절반이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외노자는 2백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윤석열 정권 시절 한동훈 당시 법무부장관은 이민청까지 설치하여 저출산의 인구절벽에 대응하고자 하였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미 외국인 이민을 사실상 진행하고 있다. 전남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입학생이 줄어 학교가 문을 닫게 생기자, 베트남에서 학생들을 유학생 명목으로 대거 유치하여 무료로 모든 것을 제공하고 있다. 이 학생들이 자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국내에 체류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또 강원도의 한 지역에서는 외국인을 들여와 정착시키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이미 오래전부터 국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 국가 상당수가 외국인 노동자를 비롯하여 외국인 이민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소위 잘사는 나라에서 못사는 나라 사람들이 꾸준히 이주하여 정착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단순히 필요 때문이라기보다는 국제 자본주의 세력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기획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진단이 있어 눈길을 끈다. 돈 논리 곧, 자본논리에 따라 진행된다고도 볼 수 있으나 배후에 이를 전 지구적으로 추진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으로 비친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각 나라나 민족의 개성과 고유성을 제거하고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 통제, 지배하겠다는 것이라고 한다.
외노자가 들어와서 그들의 문화나 역사 풍습 등을 퍼뜨려 사회의 분열을 일으키기보다는 오히려 동질화하여 하나로 만든다는 것이다. 안국진 선생이 이 같은 진단을 하였다. 그는
테오필 고티에(Théophile Gautier)이라는 인물이 『스페인 여행(Voyage en Espagne)』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에서 고유성과 다양성을 당시 유럽 세계를 볼 때 잘 보존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는 이 다양성과 고유성이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사라지고 획일화, 동질화하게 되었다고 평가하였다. 이는 세계화, 서구화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오늘날 양복으로 세계 남성들이 통일되어 입는 것이다. 그의 진단을 직접 들어 본다.
[ 글: 안국진
세계화, 서구화는 세상의 모든 것을 똑같이 만든다. 관습과 복식, 전통과 사투리는 사라진다. 지역의 복식은 관광 상품으로 변하고, 도시풍경은 글로벌 자본으로 균일화된다.
현대의 소위 선진국가들은 노동력 부족, 인구 감소, 산업 구조 변화를 이유로 대규모 이민을 급속히 받아들인다. 그런 이민의 유입은 문화적 다양성을 “늘린다”는 표면적 현실과 달리, 실제로는 장기적으로 “동질화와 몰(沒)특성화”를 가속한다.
현대의 이민은 단순히 다른 전통을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이 조직한 노동력의 유동성을 통해 모든 집단을 동일한 소비, 생산, 생활양식에 편입시키기 때문이다.
이민의 확대는 서로 다른 공동체가 충돌하거나 섞이는 과정이 아니라, 세계체제(=글로벌 자본주의)의 동일한 규범 안으로 모두를 재배치하는 과정이다.
한국에 온 네팔 노동자도, 프랑스로 간 아랍계 노동자도, 독일로 간 한국 유학생도 모두 몇 년 안에 비슷한 스마트폰, 비슷한 패스트푸드, 비슷한 옷, 비슷한 업무 규율속에 들어가고 고유한 생활방식은 빠르게 사라진다. 고티에가 스페인에서 기록한 “마지막 남은 다양성”은 오늘날 이민 흐름 안에서도 동일한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이민과 외국인 노동자의 증가는 겉으로는 다양성을 확대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세계화된 자본주의가 모든 인간을 동일한 규율과 상품, 리듬 속에 통합하는 동질화 장치로 작동한다.
이민은 ‘색깔이 다른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색깔을 잃게 만드는 시스템’을 강화한다.
푸코에 따르면 근대국가는 학교, 병영, 공장, 병원, 감옥을 통해 행동·시간·복장·언어를 표준화한다. 이것이 “고유성의 대량 소멸”을 가져오는 첫 단계였다.
들뢰즈는 이를 더 확장해 20세기를 통제사회로 본다. 경계는 사라지고, 사람들은 네트워크 속에서 끊임없이 평가, 측정, 재배치된다. 다양성은 풍경처럼 존재할 뿐, 내부적 구조는 매끄럽게 통합된 하나의 체제가 되는 것이다.
샤틀레는 서울, 파리, 베를린, 상하이의 풍경이 점점 비슷해지는 현상을 열적 평준화를 통한 통치라 불렀다. 즉, 이민을 특정 문화의 침투가 아니라, 모든 문화가 단일한 생산·소비 체제 안으로 평탄화되는 과정으로 보았다. 미셰아는 “진보라는 이름의 자본주의는, 기억을 지우고 공동체를 제거하고 인간을 교환 가능한 단위로 만든다.”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갑작스럽게 추진되는 노동 이민 확대, 체류기간 증가, 단기 인력 수급 정책 또한 표면적으로는 “다양성 강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조적으로는 지역 공동체의 붕괴 가속, 공통의 노동 규율·소비 방식 강화, 저임금 노동 구조의 고착, 외국인과 자국인 청년이 같은 지위로 통합되는 구조적 변화를 가져온다. 즉, 문화적 충돌이 아니라, 구조적 동일화가 강화되는 현상이다. 글 출처: https://www.facebook.com/mo.an.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