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학계, 국민혈세로 단합대회 겸 ‘부흥성회’ 열어

‘독립투사들 왜 식민사관 안 따르냐’며 따지는 안정준

사료까지 창조하여 북한을 중국에 팔아먹은 식민사학

사료 무시하는 식민사학이야 말로 진짜 사이비역사학

민족사학 잔치에 밀정으로 침투여 염탐한 안정준 등

민족사학과 민주당의 정책협약 파탄 낸 사이비역사학

▲식민사학계가 2025전국역사학대회를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일대에서 개최하였다. 사진 인문대학 7동 106호에서 민족사학을 사이비역사학이라고 비난하는 대회장이다. 사진: 삼태극

- 전국역사학대회는 무례한 선동꾼들의 궐기 대회

서기 2025.10.25. 서울대 인문대학 일대에서 이른바, ‘전국역사학대회’가 열렸다. 인문대학 7동 101호에서는 ‘백제문화권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주제로 중부고고학회, 경희대학교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가, 102호에서는 ‘고고학에서의 기억과 기념’을 주제로 한국고고학회가, 106호실에서는 이번 전국역사학대회 주최 목적인 ‘사이비역사학 및 뉴라이트 역사학 비판’을 주제로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고학회, 역사문제연구소, 한국상고사학회, 한국사연구회, 한국역사연구회, 역사학연구회가 발표회를 열었다.

‘전국역사학대회’라고 간판을 걸었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민족사학을 사이비역사학으로 매도하고 식민사학에 발을 들여놓은 전국의 식민사학 학도들을 모아놓고 궐기, 단합을 촉구하는 ‘부흥성회’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번 ‘2025 부흥성회’ 첫 번째 강사는 식민사학 기관지 노릇하는 경향신문에서 2016년에 대대적으로 띄워준 ‘무서운 아이들’의 ‘차남’ 격인 안정준(서울시립대 교수)이 맡았다.

그는 민족사학을 능멸, 저주, 조롱, 경고하는 것으로 연설을 대부분 채웠다. “극우 기반의 사이비 역사, 어떻게 ‘진보’로 둔갑했나” 라는 그의 이 강연 제목에서 보이듯이 1차 사료와 고고학 유물, 탄탄한 논리로 식민사학을 위협하는 민족사학에, 식민사학에 입문한 젊은 대학원생 사학도들의 이탈을 막고 정신 무장을 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는 자칭 역사 전문가, 학자라고 하면서 강연은 정반대로 선동으로 일관하였다.

일제에 항전한 독립투사들의 역사관을 잇는 민족사학을 사이비역사학이라고 비난하며 “진보로 둔갑”, “황당한 변신”, “극우주의가 발호할 토양을 제공”, “공적 담론을 오염시킬 위험성” 등 학자, 교수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막말과 선동으로 일관하였다. 마치 반공 방첩을 국시로 내세운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반공 강사의 선전, 선동을 보는 듯하였다. 한편으로 그의 어법과 용어 그리고 선동에서 부왜 숭미 목사, 새끼 전광훈의 싹이 보였다.

▲안정준 서울시립대 교수. 한편으로 그의 어법과 용어 그리고 선동에서 부왜 숭미 목사, 새끼 전광훈의 싹이 보였다. 사진: 삼태극

- '독립투사들 왜 식민사관 안 따르냐'며 따지는 안정준

그는 일제 식민주의와 역사관을 비판하는 척하면서 일제식민사관의 핵심인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한반도 서북부, 북한 평양이라고 하여 일제식민사관을 그대로 따랐다. 존속연대도 일인 학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읊었다. 그가 이날 ‘부흥성회’에서 열변을 토한 것을 직접 들어 본다.

“낙랑군은 한(漢) 제국이 고조선을 멸망시킨 후 그 중심지였던 한반도의 서북부 지역에 두었던 행정 명칭인데, 4세기 전반까지 420여 년간 중국 왕조의 지배하에 유지되었다. 일제는 ‘중국인’에 의해 ‘한국인’이 지배된 낙랑군의 역사상을 상정했으며, 이를 근거로 ‘외세의 개입과 영향에 의해 이루어진 한국사의 타율적인 고대사상’을 창출하였다.”

그는 이것이 일제가 주장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독립투사들과 북한을 질타하였다.

“신채호, 정인보 등의 민족주의 사학자들은...낙랑군이 한반도에 두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수용하지 않는 가운데, 근거로 제시된 관련 고고 발굴 조사의 결과마저 부정했다...북한의 역사학도 이러한 20세기 전반 민족주의 사가들의 낙랑군 이해를 그대로 답습했다. 평양 일대에서 출토된 수많은 고고 자료가 낙랑군의 것임을 부정하고 있다.”

위 주장에서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낙랑군은 평양에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한나라 행정기관이었고 중국 본토에서 한나라가 망했거나 말거나, 다른 나라가 섰거나 말거나 본국과 상관없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무려 420년간 존속하였는데 지배 세력은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 곧 조선인이라는 것이다.

식민기관이 평양에 설치된 것은 맞지만 실제로 지배한 것은 조선인이 대부분이었으니 실상은 중국 한나라의 식민 지배를 받은 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왜구 식민 지배를 인정하는 친일파 밀정들의 식민지 자치론으로 희석하는 짓과 맥이 같다. 더 확장하면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과도 무관하지 않다.

▲ 안정준이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내세운 것들. 모두 일제식민사학자들이 조작 날조한 것이거나 낙랑유물이 아닌 것이다. 사진: 삼태극

- 사료를 창조하여 북한을 중국에 팔아먹은 식민사학

낙랑군이 420년간 본국이 망하고 수많은 나라가 명멸하였는데도 존속하였다는 근거는 없다. 조선총독부 왜구 식민사학자들이 가르쳐 준 것을 그대로 앵무새처럼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낙랑군 420년 존속은 한나라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낙랑군을 설치한 서기전 108년과 고구려 미천왕이 낙랑군을 공격하여 '멸망'했다는 해인 서기 313년을 합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미천왕은 낙랑군을 서기 313년에 침공하여 포로로 2천여 명을 잡았을 뿐이다. 결코 멸망시키거나 이른바 북한 평양에 있다는 낙랑군을 축출한 적이 없다(十四年 冬十月侵樂浪郡 虜獲男女二千餘口).

안정준과 같은 식민사학자들은 사실이 이러한 데도 사료까지 제멋대로 창작하여 중국 1차 사료에 나오는 중국 하북성 갈석산 낙랑군은 서기 313년에 망한 낙랑군의 유민들이 중국으로 이주하여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이른바 ‘낙랑군교치설‘이다. 물론 그들의 스승, 왜인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외운 것이다.

갈석산 낙랑군은 한 무제가 세운 것이 아니라 <자치통감>에 나오는 요동의 장통으로 시작하는 낙랑군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한나라 무제가 설치한 낙랑군은 현재 북한 평양에 있었던 것이 맞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평양에 있던 낙랑군이 망했다는 서기 313년 전후 시기의 역사를 기록한 중국 <진서지리지>에는 "한나라 때 설치한" 낙랑군 속현인 수성현이 중국 진장성이 일어나는 곳에 있다고 한다(樂浪郡漢置. 統縣六, 戶三千七百. 朝鮮周封箕子地. 屯有渾彌遂城秦築長城之所起. 鏤方駟望). 이외에 같은 시기의 <진태강지리지>와 이외에 <통전>에도 같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碣石山在漢樂浪郡遂成縣長城起於此山).

이 기록에서 알수 있는 것은 한나라가 설치한 낙랑군은 북한 평양이 아니라, 중국 하북성의 진나라 장성과 갈석산 부근에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 평양에 한나라 무제가 낙랑군을 설치했다는 식민사학계의 헛소리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중국측 사료기록이다.

▲전국역사학대회 중 민족사학을 사이비역사학이라고 비난하는 대회에 참석한 사람들. 사진: 삼태극

- 식민사학과 같은 계통인 영남대 조인성 교수도 평양은 왕검성이 아니라 해

더 분명한 것은 <한서> ’가연지열전‘에 “동쪽으로 갈석산을 지나 현도와 낙랑을 군으로 삼았다(東過碣石以玄菟樂浪為郡).”고 하였다. 이 기록은 한나라 무제가 설치한 낙랑군이 처음부터 평양이 아니라 중국 갈석산 언저리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교치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서>는 위만조선을 멸망하고 낙랑군을 설치한 한나라 무제의 업적도 기록한 중국 1차사료다.

낙랑군의 위치를 낙랑군 설치 당시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기록한 1차 사료다. 여기에 분명히 중국 하북성 갈석산 근처에 낙랑군이 있다고 하였다. 왜구 식민사학자, 이마니시류(今西龍)가 내놓은 “낙랑군교치설”이 여기에 끼어들 틈이 없다.

식민사학의 하위 학문으로 스스로 기여 들어간 한국 식민고고학계의 중견학자로 알려진 영남대학 조인성 교수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2018전국역사학대회에서 평양에 위만조선 왕검성이 있었다는 고고학적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요동 언저리에 있지 않았을까 추정하였다. 낙랑군은 위만조선의 왕검성을 함락하고 세운 것이다. 이에 따르면 낙랑군은 평양이 될 수 없고 요동에 있어야 한다.

- 민족사학에 밀리자 식민사학 초년생 지키기로 선회

안정준은 이날 왜구 식민사학자들이 낙랑군 북한 평양설을 만들기 위해 조작 날조한 이른바 고고유물도 그대로 끌어다가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선동하였다. ’점재현신사비‘, ’낙랑군현별호구부‘ 나무 판자때기 등을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고고 유물이라고 내놨다.

그러나 이것도 일제가 날조, 위조한 것임을 이미 중국에서 학위를 받은 문성재 박사 등이 모두 논문과 책으로 증명한 바 있다. 심지어 서울방송에서도 2011년 3월 1일 SBS 스페셜 '역사 전쟁, 금지된 장난’이라는 제목으로 왜구의 낙랑군 고고유물 조작을 폭로한 바 있다.

더구나 당시 세키노다다시(関野貞)도 자기가 쓴 <관야정일기>에서 조선총독부 박물관에서 거액을 돈을 받고 북경 유리창 일대에서 한나라 시대 낙랑출토 유물을 “미친 듯이 힘을 다하여[極力]” 매집하여 가져왔다고 실토한 바 있다.

그런데도 왜구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맹종하는 안정준과 같은 역사학자 참칭, 사이비역사가들은 역사 진실을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국민과 식민사학 초년생들을 대상으로 선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낙랑군이 중국에 있었다는 명명백백한 증거와 증언을 모조리 감추고 한나라 식민 통치기관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막무가내로 우긴다. 일종의 정치 선동인 셈이다.

안정준과 같은 식민사학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북경 유리창에서 한나라 시대 낙랑 출토물을 찾았으니 그곳이 낙랑군이었다는 말이 된다. 결코 평양이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될 수 없다.

안정준은 이런 생생한 증거들을 모조리 숨기고 이제 막 식민사학의 길에 들어선 사학도들에게 자기 말이 맞으니 믿으라고 선전, 선동하였다.

▲안정준은 민족사학계가 지난 8월 28일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개최한 ‘역사바로세우기 범국민전진대회’에 나온 이종찬 광복회장,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을 붉은 색 원으로 지목하여 비난하였다. 사진: 삼태극

- 식민사학이야말로 진짜 사이비역사학

이들의 말대로 역사학은 사료가 먼저다. 고고 유물유적은 나중이다. 이들의 식민사관 원조이며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부역한 악질 친일 사학자, 두계 이병도도 같은 말을 하였다.

그런데도 낙랑군이 중국 하북성 일대에 있었다는 중국 1차 사료를 깡그리 무시한다. 반면에 저들이 사이비역사학이라고 비난하는 민족사학은 위에 제시한 중국 1차 사료를 제일 앞에 내세운다. 1차 사료를 취급하지 않으면 그건 역사학이 아니다. 안정준과 같은 학자를 참칭하는 식민사학이야말로 사이비역사학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이들이 사이비역사학임이 증명되었으니 사이비역사학이라고 부른다.

안정준은 민족사학계가 지난 8월 28일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개최한 ‘역사바로세우기 범국민전진대회’에 나온 이종찬 광복회장,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을 지목하여 비난하였다. 사진: 삼태극

- 민족사학 잔치에 밀정으로 침투하여 조롱하는 안정준 등

안정준은 이날 민족사학이 지난 8월 28일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개최한 ‘역사바로세우기 범국민전진대회’에 몰래 침투하여 밀정으로 염탐한 것을 대견스럽게 자랑하였다. 대회 현장에서 민족사학 편인 것처럼 위장하고 “식민사관청산”, “뉴라이트 척결!” 등 푯말을 들고 찍은 사진을 발표 화면에 띄워놓고 자신들의 무용담을 늘어놨다.

특히 이종찬 광복회장과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을 ‘사이비역사학을 퍼뜨리는 수괴’ 취급하며 이들을 크게 확대한 사진에 붉은 동그라미를 칠하여 마치 지명수배된 범죄자 인양 매도하였다. 이에 참석자들이 통쾌하다는 웃음으로 화답하였다. 도저히 양식 있는 학자나 교수라고는 볼 수 없는 비열한 짓을 벌였다.

이날 현장에 선배나 지도교수들의 권유로 참석했을 이제 막 식민사학에 입문한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원 초년생들에게는 이종찬, 이덕일 두 사람이 아주나쁜 인물로 강렬하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거의 백지상태에서 각인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나쁜 인상이 이들의 학문에서 평생 이어질 것이다.

▲식민사학 전위대들이 대회 현장에서 민족사학 편인 것처럼 위장하고 “식민사관청산”, “뉴라이트 척결!” 등 푯말을 들고 찍은 사진을 발표 화면에 띄워놓고 자신들의 무용담을 늘어놨다. 사진: 삼태극

- 환생한 왜구 밀정들, 정당하게 취재하는 기재 폭행

이날 ‘부흥성회’는 왜구 치하 밀정들이 환생하여 국민 혈세로 자축하는 현장이었다. 사이비역사학계의 ‘부흥성회’ 좌석 곳곳에 환생한 밀정들이 박혀 있었다. 기자가 국민 혈세로 자행되는 사이비역사학=식민사학의 ‘부흥성회’에 이들의 범죄 현장을 잡으러 취재하러 들어갔다. 휴대폰으로 현장을 촬영하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뒤에서 누군가 표독스런 목소리로 찍지 말라며 기자의 허리를 쿡쿡 찌르며 폭행하였다. 초로의 여인이었다. 알고 보니 이날 “뉴라이트 역사교육 비판 : 리박스쿨의 실태와 문제점”을 주제로 세 번째 발표자로 나선 대림대학교에서 교수 노릇하는 이지원씨였다.

그는 예전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한국고대사학회 등 식민사학계가 민족사학을 성토하는 발표회에 기자 갔었던 것을 지적하였다. ‘거기서도 동영상을 찍으며 문제를 일으키더니 이번에도 그런다’는 식으로 힐난하였다.

섬뜩하였다. 그때가 서기 2016년도다. 거의 10년이 되었는데 기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기자는 이날 모자를 쓰고 있었고 그때보다 살이 엄청나게 빠졌으며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당시는 머리카락도 많았고 모자도 안 썼으며 살도 쪄 포동포동하였고 면도도 말끔하게 하여 수염도 당연히 없었다. 그런데도 정확하게 짚어냈다. 정확하게 왜구 치하 왜구 졸개, 밀정의 고도로 발달 된 촉이었다. 무서웠다.

밀정은 또 있었다. 기자는 이날 참석자를 배경으로 기자의 얼굴을 찍었다. 최대한 참석자들이 확대되어 나오지 않고 기자만 크게 나오게 찍으려고 하였다. 이때 얼굴을 입마개로 가린 여성이 뒤에서 달려와 뒤에서 표독스럽게 후려쳤다. 자기가 찍히는 것이 화났던 모양이었다. 다행히 빗나갔다. 휴대폰을 내려쳤는데 안 맞은 것이다. 이 여자는 입마개로 얼굴에 복면하고 있어서 설사 찍혀도 사람들이 자신이 누군지 알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이 짓을 벌였다.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한가지로 기자에게 적의를 드러냈다. 그동안 민족사학을 없애자는 지속적인 선전, 선동과 궐기 대회 등으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조건반사로 나온 행동이었다.

▲이지원 대림대학교 교수가 '리박스쿨' 문제점과 극복방안을 발표하기에 앞서 발표대에 서 있다. 사진: 삼태극

- 박천수, 이덕일을 몰아붙이다

이날 두 번째 강사로 나선 박천수(경북대학교 교수)는 안정준처럼 사이비역사학계가 식민사관을 극복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임나일본부설을 가지고 나왔다.

발표주제는 “한일 사이비역사학과 임나일본부론 및 일본열도분국론” 이었다. 그는 강연 시간 대부분을 이덕일을 비판하는 것으로 할애하였다. 이덕일이 ‘사이비역사학계가 임나가 현재 가야라는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는 것’을 재비판하였다. 임나에 속하는 양직공도의 기문, 다라 지명이 한반도 남부지방을 가리키는데 이에 대하여 답을 하라고 촉구하였다.

그러면서 “이덕일은 20세기 후반 이래 임나일본부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온 국내 역사학계가 이를 추종하는 것으로 매도하고 있으며, 시민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오히려 이덕일과 이를 추종하는 일파가 해야할 일은 지금도 임나일본부를 추종하고 있는 일본의 사이비 역사학을 비판하는 것이다.”라고 비난하였다.

- 장고형 고분, 전방후원분은 한국이 원조

그는 이날 임나일본부를 극복하였다면서 전라남도 영산강 일대에 분포한 이른바 전방후원분(장고형무덤)을 집중 조명하였다. 결론은 백제가 끌어모은 왜(倭)용병이 이 무덤들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통상 용병은 강대국에서 약소국 백성을 자기 군대를 돕는 보조 병력으로 일시적으로 채용하는 병력이다.

반남 고분군으로 상징되는 전방후원분은 누가 봐도 이 지역의 지배자 또는 왕급의 무덤이다. 그런데 이들의 말대로라면 일시적으로 와 있는 왜용병이 이 지역 지배 세력인 백제보다 더 크고 웅장한 무덤을 만들었고 최고급의 장신구를 착용한 것이 된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주장이다. 현재 일 극우파와 조선총독부는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식민지배했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의 가장 유력한 증거로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분포된 이 전방후원분을 내세운다. 사이비역사학계(박천수)는 전방후원분의 원조가 일본이라고 한다. 이는 왜구 조선총독부가 주장하는 것과 같다.

▲ 박천수는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들이 왜(倭)용병의 이 무덤들들이라고 하였다. 사진: 삼태극.

그러나 전방후원분의 발생지가 한반도라는 것은 이미 <KBS HD역사스페셜 – 한일역사전쟁! 영산강 장고형 무덤 / KBS 20050722 방송>에서 증명되었다. 서기 1996년 충남 보령시 주교면 관창리에서 전방후원분의 원형인 주구로 된 무덤이 발굴되었다. 이는 일본 주구묘보다 1백년 이상 앞선 것이다. 이때 연락받고 온 일본 엔에이치케이(NHK)방송은 헬기까지 동원하여 확인하였다.

이때 발굴에 참여한 이홍종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일본인 학자가 현장을 보고서 자신이 전방후원분의 원조는 일본이라고 20~30년 연구한 학문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증언하였다. 그 일본인 학자는 방형 주구묘가 일본에만 있고 이 묘제가 전방후원분으로 발달하였으니 전방후원분은 일본이 원조라는 일본독자기원설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관창리에서 방형주구묘가 쏟아져 나왔다. 그것도 일본 것보다 1백 년 이상 앞선 것으로 드러났다. 박천수, 김현구 등 일본 극우파 학설 추종하는 사이비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몰랐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분야 전문학자들이기 때문에 한국방송의 이 같은 방송을 모두 보았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 같은 실증사실을 숨기고 재침략을 노리는 일본극우파, 곧 일제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추종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에 퍼뜨리고 있다. 결국 박천수가 왜구 식민사학의 한 축인 임나일본부설을 극복하였다고 설을 풀었지만, 대국민 속임수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 서기1996년 일본 국영방송 엔이치케이는 충남 보령시 주교면 관창리에서 전방후원분의 원형인 주구로 된 무덤이 발굴되었다고 직승기까지 띄워가며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자료: 한국방송 영상 발췌.

- 한국고대사학회 회장, 여호규에게 묻다

사이비역사학계의 ‘부흥성회’가 끝나고 이날 부흥성회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고대학회 회장, 여호규(한국외국어대학교)에게 언론사명을 밝히고 취재하였다.

먼저 “영산강 일대의 전방후원분의 원조가 어디라고 보느냐?”고 물었다. 이에 여호규 회장은 '당연히 일본이 원조'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이어 “영산강 일대의 전방후원분을 박천수 교수는 왜용병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고려대 전 교수 김현구씨도 같은 주장이다, 교수님은 어떻게 보는가?” 라고 물었다.

이에 “그 부분은 학설이 나뉜다.”라며 기자의 다음에 이어질 질문에 막힐 것을 예상한 듯이 답하였다.

이어 기자가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의 유력한 근거로 전라남도 영산강 일대의 전방후원분을 내세운다. 원조가 일본이라고 하는데 결국 임나일본부설을 인정하는 것 아닌가, 일본의 이 주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고 하자, 이에 그는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기자가 질문을 바꾸어 “역사학계와 사이비역사학이라고 비판하는 저쪽의 학설 ‘대립’이 심한데 오늘 발표한 ‘리박스쿨’이나 ‘뉴라이트’ 비판에서 저쪽과 접점이 있고 뜻을 같이하니 어떻게 ‘대립’을 풀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는가? ”라고 하였다.

그는 “ ‘대립’은 무슨 ‘대립’인가, 저쪽은 학문이 아니다. 어디에다 ‘대립’이라는 말을 갖대 붙이는가.” 라고 하였다.

이에 기자가 “그렇더라도 저쪽과 토론 같은 것이라도 해서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제안하였다.

그는 “저기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토론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토론을 거부한다.”라며 사이비역사학하고 토론하는 것을 어떻게 입에 담느냐는 식으로 기자를 훈계하였다.

▲전국역사학대회 단체들의 성명서를 낭독하는 여호규 한국고대사학회 회장. 사진: 삼태극

- 사이비역사학계, 민족사학-민주당 정책협약 파탄 내

조선총독부발 사이비역사학계는 이날 전국역사학대회 참가단체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자기 입맛에 맞는 역사적 사실만 뽑아내거나 심지어 사실을 왜곡해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대로 이 말은 자신들에게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1차 사료와 고고 유물 등 허구의 식민사관을 밝히는 증거들을 버리고, 조선총독부가 가르쳐준 것만 선택하여 조선총독부발 사이비역사학 독극물로 국민정신을 오염시키고 왜구의 정신적 포로로 만들고 있다.

사이비역사학계는 이날 ‘부흥성회’를 마치고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한국고대사학회 회장, 여호규가 낭독하였고 주요 인사들이 입회하였다. 성명서에는 “대선 기간인 2025년 5월 22일에 민주당이 사이비역사학 단체와 정책협약식을 가졌다. 이에 대해 한국고대사·고고학협의회가 사이비역사학의 위험성을 알리는 입장문을 전달하고, 국정기획위원회에도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말이 있다.

여호규 회장은 이날 기자에게 자신들이 비공식적으로 국정기획위원회를 찾아 민족사학과 민주당의 정책협약의 부당함을 밝혔고 결국 관철시켰다는 식으로 부연설명해 주었다. 정책협약 이행을 촉구하는 ‘828 역사바로세우기범국민전진대회’에 정책협약을 약속한 민주당 현역의원이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고, 협약이행이 지지부진한 것을 보면 이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역사 관련 연구, 편찬, 사업 등 개입을 차단하여 민족사학을 타도 하겠다는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단체가 아래와 같다.

공공역사문화연구소, 대구사학회, 도시사학회, 동양사학회, 민족문제연구소, 역사교육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역사학회, 중부고고학회, 한국고고학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사연구회, 한국사학회, 한국상고사학회, 한국생태환경사학회, 한국서양사학회, 한국역사교육학회, 한국역사민속학회, 한국역사연구회, 호남사학회 (이상 2025년도 전국역사학대회에 참가한 22개 학회)

여기에 친일인명사전 편찬한다며 국민이게 돈을 걷은 민족문제연구소도 있다. 식민사학 홍보지로 변질된 <역사비평>을 발행하는 역사문제연구소도 보인다.

▲ 사이비역사학계는 이날 ‘부흥성회’를 마치고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한국고대사학회 회장, 여호규가 낭독하였고 주요 인사들이 입회하였다. 사진: 삼태극

이번 사이비역사학계의 전국역사학대회를 빙자한 사이비역사학 전파와 민족사학 성토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한민국은 해방 후 80년이 되었는데도 국민정신을 좌우하는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지 못한 채 민족사학과 사이비역사학 진영으로 갈라져 역사내전을 벌이고 있다.

국토가 분단되어 남북으로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하고 분단조국 남반부에서는 여전히 이념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념 전쟁의 연장선 상에 있는 역사내전은 대한민국의 정신과 정체성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이 사회 지배세력, 특히 정치세력은 식민사관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역사전쟁을 학문논쟁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현재도 일왕이 지배하는 일본 극우파의 식민사관을 유일한 학설로 80년 동안 대한민국 국민을 조롱하며 역사독재를 해온 사이비역사학이 우리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한 대한민국은 왜구의 노예 상태서 벗어 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