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효백(경희대 전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통사에 진취적이고 공격형 장수 많아

강이식, 요서 산동 선제 공격한 고구려 원수

연개소문, 북경 하북 산동 강소성까지 진격

고려사에 고려 땅 동북은 고구려보다 넓어

일제식민사관이 숨긴 역사 진실 찾기 시작

▲ 《고려사》 지리지 서문은 냉엄히 기록한다. “서북은 당나라 이래로 압록을 경계로 삼았고(西北 自唐以來 以鴨綠爲限), 동북은 고구려의 경계를 넘어섰다(東北踰高句麗之境).”


《 한국통사 공격형 장군 21인 》

― 진취와 전진의 기록

1. 강이식 (550~?) ― 요서·산동을 선제공격한 고구려 원수

2. 연개소문 (614~664) ― 북경·하북·산동·강소성까지 진격

3. 설오유 (?~?) ― 압록강을 넘어 요동에 진군한 신라 장군

4. 장문휴 (690~?) ― 산동 등주를 정복한 발해 장군

5. 이정기 (732~782) ― 산동을 지배한 고구려 유민 장군

6. 장보고 (787~846) ― 동중국해·산동을 장악 해상 제국의 패권자

7. 윤관 (1040~1111) ― 길림·흑룡강에 동북 9성을 설치

8. 왕자지 (1066~1122) ― 송화강까지 국경을 확대

9. 척준경 (?~1144) ― 동북 9성 만주 개척의 최전선 무장

10. 김방경 (1212~1310) ― 일본 원정을 총지휘

11. 한희유 (?~1306) ― 대마도와 연해주를 정벌

12. 인당 (?~1356) ― 요동을 함락하고도 처형당한 비운의 장군

13. 박위 (?~1398) ― 대마도를 불태운 고려의 마지막 장군

14. 이성계 (1335~1408) ― 압록강을 2회 도하 동만주 수복

15. 김사형 (1353~1401) ― 대마도와 이키도를 정벌

16. 이종무 (1360~1425) ― 대마도를 초토화, 경상도 관활로 확정

17. 이천 (?~1440) ― 압록강 북방 80km까지 영토를 확대

18. 최윤덕 (1376~1445) ― 요녕성 파저강에 4군을 설치

19. 남이 (1441~1468) ― 두만강을 넘어 여진족장을 참수

20. 어유소 (1434~1489) ― 요양·심양까지 진격한 문무겸비

21. 신류 (1619~1680) ― 아무르강 전투에서 러시아를 격파

머리말 ― 창끝으로 그은 지도, 공격형 장군들의 나라

역사의 진실은 방어선에서만 태어나지 않는다. 때로는 창끝이 지도를 그린다.

《고려사》 지리지 서문은 냉엄히 기록한다.

“서북은 당나라 이래로 압록을 경계로 삼았고(西北 自唐以來 以鴨綠爲限), 동북은 고구려의 경계를 넘어섰다(東北踰高句麗之境).”

고려는 고구려의 그늘에만 머문 나라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선을 넘어 새로운 경계를 열어젖힌 국가였다. 이것은 신화나 민담이 아니라, 원전 속에 살아 있는 국경의 문장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수비의 영웅만을 기억해 왔다. 을지문덕, 강한찬(강감찬‘으로 왜족이 조작), 최영, 이순신—침탈을 막아낸 거대한 방패들. 그러나 공격은 언제나 방어의 선행 조건이었다.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을 통틀어 가장 빈번히 칭송된 장수는, 놀랍게도 적을 물리친 수비형 장군이 아니라 동북 9성을 개척한 윤관이었다. 그의 별무반은 흑룡강으로 이어지는 길을 현실로 바꾸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스물한 명의 장군은 방패가 아니었다. 그들은 국경을 밀어올린 창끝이었다. 강이식의 요동 선제공격과 수군 섬멸, 연개소문의 북경·하북 돌파, 장문휴의 산동 상륙, 장보고의 해상 패권, 윤관·척준경의 동북 진출, 김방경의 일본 원정, 한희유의 연해주·대마도 입체전, 인당의 요동 돌파, 박위·이성계의 북방과 대마도 응징, 이종무의 대마도 초토화, 최윤덕의 파저강 돌파, 남이의 두만강 진격, 어유소의 요동 타격, 신류의 아무르강 승전까지—그들의 행군은 곧 지도의 변위였고, 그들의 결단은 국토의 문장이었다.

나는 실증학파이자 백과전서파 법학자로서 ‘주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정사와 사실만을 근거로 ‘입증’한다.

본서는 한국과 중국의 정사(《삼국사기》, 《고려사》, 《동국통감》, 《조선왕조실록》과 중국의 25사《수서》,《구당서》,《신당서》 《송사》 《금사》 《원사》) 《명사》, 와 지리지(《세종실록지리지》, 《아방강역고》, 《요동지》, 《만주원류고》 등)과 브리태니커, 영문 위키백과 등 세계 주요 백과사전을 입체적으로 교차검증하였다. 특히 이중 완전히 합치한 것만을 사료로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였으며, 전설 신화 야사는 물론 일체의 추측이나 과장은 배제하였다.

술이부작, 이실직서—꾸며 쓰지 않고, 사실만 기록했다.

중국 정사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금사』 「열전·외국·고려」는 “고려의 영역은 압록에서 흑룡강까지 이어진다(鴨綠—黑龍)”고 증언한다. 청 건륭제의 관찬 《사고전서》에 수록된 〈조선부〉는 “조선의 폭원은 동서 2천리, 남북 4천리(朝鮮幅圓 東西二千里 南北四千里)”라고 분명히 적는다. 이 수치는 조선 내부의 자찬이 아니라, 외부 기록의 반복 증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공격을 잊었는가. 왜 우리는 ‘잃은 땅의 서사’만 되뇌이고, ‘열어젖힌 국경의 서사’를 말하지 않는가. 이 책은 그 맹점을 찢고, 선제·정벌·개척으로 이어진 공격형 장군들의 대서사를 복원한다.

장군들은 영웅담이 아니라, 지도 위의 새로운 선으로 기록된다. 그들의 승전 뒤에는 성과 고을의 이름이 바뀌고, 세곡 창고의 무게가 달라졌으며, 민족의 호흡이 넓어졌다. 지도의 선은 피와 땀의 궤적이었다.

윤관과 척준경의 동북 9성, 장문휴의 산동 기습, 장보고의 해상망, 김방경의 일본 원정, 인당의 요동 돌파, 이성계의 만주 수복,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 최윤덕의 파저강, 남이의 단정한 기개, 신류의 아무르 전승—그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지도는 넓어지고, 민족의 기상은 커졌다.

이제 책을 펼치라. 공격형 장군 21인이 행군을 시작한다.

그들의 창끝은 방패를 넘어, 역사의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한국통사 공격형 장군 서론 끝).

출처: https://www.facebook.com/ganghyobae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