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 나간 뒤 미국, 한국 정부 아닌 미군정 세워
미군정 왜구 부역자로 채워, 역사도 부역자 그대로
왜구에게 뺏긴 역사 그대로니, 광복된 것 아냐
고녕가야는 우리 역사에서 아예 삭제된 채 방치
구국 이어 역사복원도 스님 의병장들의 활약 빛나
지정스님, 상주함창 고녕가야 광복투쟁에 십여년
입체적, 종합적 고녕가야 전문가로 기념비 업적
▲지정스님이 고녕가야 실체를 고증하였다. 자료: 삼태극
1. 대한민국 광복된 것 아냐
대한민국이 35년 왜구치하에서 서기1945.08.15. 광복되었다고 한다. 매년 광복절이 되면 대통령을 비롯하여 나라를 대표하거나 상징하는 인사들과 국민이 함께 광복의 의미를 기린다. ‘광복光復’이라는 말은 “빛을 되찾았다, 잃었던 나라를 되찾았다.”는 말로 풀 수 있다. 이는 한마디로 왜구에게 빼앗긴 것을 되찾아 왔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대한민국은 광복된 적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역사는 되찾아 온 적이 없다. 왜구는 태평양 전쟁으로 전선을 확장하면서 재정난으로 허덕이면서도 우리 역사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말살, 왜곡하는 총독부산하 조선사편수회 예산을 깎지 않았다. 오히려 늘렸다. 서기 1937년 중일전쟁으로 전선을 확장하면서도 이듬해 우리나라 역사 왜곡, 말살의 결정체, <조선사35권>을 완간하면서 100만원이라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재정을 투입하였다.
이는 왜구가 우리 민족을 말살하고자 우리 역사를 왜곡, 날조, 파괴하는 데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보여준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학교 국사 교과서가 이 <조선사 35권>에서 나왔다. 왜구 치하 조선총독부는 역사교육지침까지 세밀하게 정해서 각급 학교에 하달하고 이를 뼈대로 하여 학생들, 특히 조선인 학생에게 가르칠 것을 강요하였다. 그 지침 중 대표 책이 <심상소학일본역사보충교재교수참고서>다.
일본제국의 1개 지방으로 조선을 만들어 놓고 일본제국의 지방 역사로 우리 역사를 조작 날조하여 끼워 넣었다.
우리 역사를 파괴 말살하여 없애 버린 것이다. 조선인을 일본제국의 1개 신민으로 만들고 이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우리 역사를 창작해서 가르친 것이다.우리는 이 시기 우리 역사를 빼앗겼고 잃어버렸다.
서기 1945.08.15. 미국의 원자폭탄을 맞고 왜구가 물러갔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에게 정권을 넘겨주지 않았고 미국군 정부를 세워, 조선총독부에 부역한 밀정 등 부역자들을 그대로 고용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그대로 대한민국 정부 기초를 이루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새로운 나라가 들어서거나 새로운 왕조가 탄생하면 구체제와 인물을 버리고 새로운 인물과 정신과 사상, 제도, 장치들로 채운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것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역사분야에서도 전혀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아 조선총독부 체제 그대로 이어졌고 조선총독부 식민주의 역사관으로 절은 역사책을 발간하여 가르쳤다. 이 토대를 만든 인물이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 부역한 악질 친일 역사학자, 이병도와 신석호다.
왜구에게 잃어버린 역사를 전혀 되찾아 오지 못하였고 총독부 체제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 왔다는 광복이라고 할 수 있는가.
▲ 2025고녕가야 복원 학술회에는 스님들이 대거 참여하여 스님역사의병의 모습을 보여줬다. 자료: 삼태극
2. 민족사학계와 함께 스님들 역사광복 승병 투쟁
십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민족사학계는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를 중심으로 잃어버린 역사 찾기 곧, 역사광복전쟁을 제도권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는 식민사학계와 벌이고 있다. 여기에는 스님들도 역사광복 승병 투쟁으로 나서고 있어 가슴이 뭉클함을 금할 수 없다. 김해지역에서 가야사 복원 투쟁하고 있는 부산 범어사 성보박물관 부관장을 맡고있는 도명스님, 서기 2023.10. 일제식민사관으로 제작한 ‘전라도천년사’를 폐기하라며 전북도청 앞에서 철야 농성투쟁을 벌인 조계종 원로, 청정 고운맘 스님, 경주 상주지역 고녕가야 복원투쟁을 해오고 있는 봉천사 주지, 지정스님이 대표 사례다. 이 스님들의 투쟁 양상을 보면 임진왜란 때 승병 전쟁을 보는 것과 같다. 왕과 양반 등 집권자들이 못나 왜구침략을 받자, 스님들이 모여 의병을 일으킨 것과 너무나 닮아있다.
국가가 외면하고 심지어 제도권 식민사학의 우리 역사 파괴를 혈세로 지원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향하여 봉기한 것이다. 지역민과 불교 신도들이 함께 투쟁하는 모양을 띠고 있다.
▲지정스님은 고녕가야를 문헌사료로 증명하였다. 자료: 삼태극
3. 봉천사 주지, 지정스님 고녕가야 복원 투쟁
특히 봉천사 주지를 맡고있는 지정스님은 경북 상주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고녕가야역사를 복원하는데 스님 의병장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여 다방면으로 강력하게 투쟁하고 있다. 고녕가야 유적, 유물 조사와 연구 등으로 쌓은 고고학적 지식은 제도권 전문학자들도 인정할 정도이다. 여기에 문헌조사와 연구도 전문가 이상이라는 평을 듣는다.
서기 2025.11.15. 경북 문경문화원에서 고녕가야 복원 학술발표회가 열렸다. 이 발표회도 지정스님이 고녕가야복원 투쟁의 일환으로 마련하였다. 경향 각지의 다방면의 인사들이 참석하였다. 특히 비구, 비구니 스님들이 대거 참여하여 참석자들을 놀라게 하였다.
발표회에 앞서 여러 인사들이 발표회를 축하하고 고녕가야 복원 투쟁의 성공을 기원하며 지원을 약속하였다. 축하 인사말에서 공통으로 터져 나온 말이 있었다. 지정 스님을 ’승병장‘, ’의병장‘이라고 명명하였다.
지정 스님은 고녕가야 복원을 위해 십여년 전부터 투쟁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학을 장악하고 있는 제도권 식민사학은 우리역사를 왜곡, 날조하고 있지만 대부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아예 역사에 지우고 역사로 취급하지 않는 역사가 있다. 경북 상주 함창 지역의 고녕가야다. 고녕가야 역사를 없애 버린 것도 역시 조선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든 왜구다.
단군조선의 역사를 없애 버린 왜구 식민사학자, 나카 미치요(那珂通世, 1851~1908)가 가야역사는 경남 김해를 중심으로 있었지 경북 문경상주지역의 고녕가야는 아니라고 한 이래, 이를 이어받은 악질 식민사학자 이병도가 고녕가야를 부정하여 고녕가야역사는 오늘날까지 교과서에 사라진 채로 유령 취급받고 있다.
지정 스님은 봉천사 주지로 주석한 이래 경북 상주 오봉산 일대를 비롯하여 낙동강 상류부터 중류에 이르기까지 수백 개 심지어 1만여 기의 왕급 무덤부터 크고 작은 무덤들이 널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사와 탐사, 연구해 본 결과 이 지역에 거대한 정치체를 형성한 국가급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실체를 파악하고 알리며 제 모습을 찾는데 투신하였다.
학술회의도 개최하고 제도권 역사학계에 발굴과 복원을 촉구하는 등 이제까지 10여 년 동안 싸워 오고 있다. 올해도 문경문화원에서 고녕가야 실체와 진실 그리고 가치를 알리는 학술대회를 사비를 들여 개최하였다.
▲ 참석자들이 순국선열에 묵념하였다. 비구는 물론 비구니 스님들도 역사의병으로 참여하였다. 자료: 삼태극
4. 발표회 축사에 드러난 지정스님의 투쟁 여정
서기 2025.11.15. 문경시문화원에서 오후 1시부터 시작하였다. 학술발표회는 축사로 시작하였다. 첫 번째 축사자로 나선 박윤길 경북향토사연구위원의 축사는 지정스님의 고녕가야 복원 투쟁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알려 주는 것이었다.
경북지역 향토역사 연구위원으로 지정스님과 함께 해온 사람으로 지정스님의 투쟁 여정과 고난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직접 그의 증언 일부를 들어 본다.
[혼자라면 결코 감당하기 힘들었을 긴 시간 동안, 지정스님께서는 관련 역사문헌을 찾고 야산을 오르며, 고분을 살피고, 오래된 문헌과 비문을 일일이 대조하시면서, 잊혀져 가던 역사의 파편들을 한 알 한 알 모아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땅 상주문경 함창에는, 오랜 세월을 견뎌온 왕릉과 고분, 비문과 지명, 그리고 후손들의 생생한 기억이 살아 있습니다. 고로 왕릉으로 전해 내려오는 태조왕과 왕비의 능, 그리고 함녕 김씨 후손들의 제향 전통, 오봉산과 병풍산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가야계 고분들은, 이곳이 결코 가야사의 주변부가 아니라 가야사의 본류를 이루는 핵심 중심부이고 고녕가야의 본산이었음을 소리 없이 외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다시 세상 앞에 분명하게 알리기 위해, 지정스님은 지난 오랜 기간 동안 거액의 사비를 출연하여 수 차례의 학술대회와 토론회, 현장 답사와 자료조사를 이어 오셨습니다.
문헌과 유물, 비문과 지명, 구전과 민속을 하나하나 모으고 엮어, 고녕가야의 정치체와 권역, 문화와 생활, 그리고 가야 전체 역사 속에서의 위상을 재조명해 오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사학계의 냉담한 시선과 행정기관의 무관심, 제도와 예산의 벽에 가로막히기도 했지만, 지정스님께서는 “역사는 결국 진실 쪽으로 흐른다”는 믿음 하나로 여기까지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존경하는 역사운동가 지정스님!
스님께서는 지난 세월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고분을 오르내리고, 밤늦게까지 사료를 뒤적이며, 때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때로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묵묵히 걸어오신 길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오늘 이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어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스님의 수많은 땀과 눈물, 그리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강한 집념과 사명감이 있었기에, 오늘날 고녕가야의 이름이 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 및 재인식되고 있으며 언론과 학계, 행정기관의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박윤길 경북향토사연구위원이 지정스님의 투쟁역사를 담은 축사를 하였다. 자료: 삼태극
5. 고녕가야 실체 꿰뚫고 있는 지정스님
박윤길 연구위원의 증언처럼 지정 스님은 제도권 역사학계가 요구하는 역사복원을 위한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날 고녕가야복원 학술발표회에서 지정스님이 발표한 내용을 보면 실증주의에 바탕을 둔 정밀한 분석과 고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정스님의 이제 까지의 고녕가야 연구가 고고유물과 문헌을 통한 일반적인 증명이었다면, 이번 발표는 산과 하천 인공물인 산성을 바탕으로 고녕 가야의 실체를 밝혔다는 점에서 고녕가야 증명의 완결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박 연구위원이 구체적인 증거를 들어 밝혔듯이 고녕가야의 존재를 알 수 있는 문헌과 이를 뒷받침하는 고고학 자료는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왜구가 만들어 주고 간 식민사관으로 밥벌이 해온 제도권 식민사학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갖은 핑계를 대고 외면하고 있다. 심지어 ‘유사역사학’, ‘사이비역사학’이라고 능멸하고 정부에 선전 선동하여 고녕가야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아예 차단한다.
그럼에도 이날 지정 스님의 발표에는 고녕 가야 복원 의지가 꺾이기는커녕 더 강하게 녹아 있었다. 일말의 요동도 없이 식민사학을 준엄하게 심판하는 듯한 어조로 고녕가야가 국가급 역사라는 것을 실증하였다.
▲ 지정스님이 문경지역 고녕가야 지명에 얽힌 역사를 풀었다. 자료: 삼태극
“함창고녕가야는 6가야 중에서 하천이 가장 많이 분포해 있으며 그 수로를 따라 넓은 수변지역과 평야를 보유하고 있다. 한 국가의 형성은 강과 평야 그리고 적의 침입에 대하여 방어할 수 있는 산악 등 여러 가지 자연조건이 갖추어져야 가능했다. 병참기지로써 산과 함께 산성이 있어야 국가를 방어 할 수 있으며 산성의 축성은 고대국가성립에 필수조건이다. 함창고녕가야는 이러한 고대국가 형성조선을 잘 구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을 보면 지정스님은 역사학이 요구하는 역사일반지식을 기본으로 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선언은 고녕가야의 실체를 입체적, 종합적으로 꿰뚫고 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주제발표 제목도 전문학술지 논문에서나 볼 수 있는 용어로 구사하고 있다. ‘삼강과 원산성과 함창고녕가야와의 연관성’ 이다.
이러한 전문가적 실증에도 불구하고 제도권 식민사학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지정스님의 복원투쟁을 보도로 함께 해온 전 불교신문편집국장 여태동 박사는 지정스님의 발표에 논평자로 참여하여 평가를 하는 가운데 지정스님의 주장이 인정을 받으려면 식민사학계가 요구하는 학위를 취득하라고 채근하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현재는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쓰는 일만 남았다고 그간의 투쟁 한 꼭지를 들려주었다.
▲여태동 전 불교신문편집국장이 지정스님과 함께 고녕가야 복원투쟁을 해온 여정을 밝혔다. 자료: 삼태극
6. 고녕가야 질문에 기득권 식민학자들의 반응
지정스님은 발표 끝물에서 그동안 투쟁해 온 결과를 내왔다. 고녕가야를 정부와 역사학을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 역사학자들에게 물었고 반응이 나왔다.
기득권 학자는 김태식, 이영식, 이근우, 박천수, 백승옥이었다. 지정스님이 이들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응답을 요구하였다. 김태식 전 홍익대 교수는 여러 번 공문을 보냈으나 응답하지 않았다. 다만 예전에 매체에서 내놓은 것이 있는데 가야사 전문가라고 하면서 남 얘기하듯 무성의하게 반응하였다. “(고녕가야는) 김씨 문중에서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다.”
이영식 인제대 교수는 “고녕가야를 부정한 적도 연구한 적도 없습니다.”라고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상황에 따라 이를 붙을 수도 있고 저리 붙을 수도 있다는 발언이다.
이근우 부경대 교수는 “교수라 해서 전부를 다 알 수는 없습니다. 문경에 계시는 스님께서 연구를 더 해주십시오.”라고 제안했다. 전형적인 무책임주의자의 발언이다. 학문에 주관과 지조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정 스님이 이 사람의 말대로 연구를 다 하였다고 하였더라도 또 다른 핑계를 대고 고녕가야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박천수 경북대 교수는 “나도 고녕가야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유물이 나와야 합니다. 상주시에 건의하여 계속 발굴하도록 합시다.”라고 하였다. 유물이 나와야 인정하겠다는 소리인데 이날 지정스님은 (박천수가) ‘유물이 나와도 자기가 인정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지정스님을 조롱한 것이다.
백승옥은 해양박물관장으로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함창고녕가야를 인정합니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인정하면 사라진 역사가 드러난 것이니 관련 학자로서 학계와 정부에 복원하도록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한다. 그렇게 할 리가 만무하다.
▲ 제도권 식민학자들의 고녕가야에 대한 반응을 전하는 지정스님. 자료: 삼태극
7. 2015고녕가야복원 발표회는 한국학술대회 모범
이날 지정 스님은 제도권 식민사학계를 역사 범죄자들로 정의하고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포고문’ 형식으로 담아 식민사학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이날 학술발표회는 일개 지방 역사를 다루는 지엽적인 비전문가들의 ‘사랑방 대담’ 정도로 비추어지기 쉬웠다. 내용을 들어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리 역사를 열고 지탱하는 정신, 철학, 사상에서부터 한민족 전체 근원을 알려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준 높은 학술대회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더구나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으면서도 기득권 학계의 소위 전문학술대회처럼 전문성도 차고 넘치게 갖추고 있었다.
보통 제도권이 여는 학술대회는 전문성이 있으나 너무 세밀하게 들어가 일반인이 들으면 지루하고 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본지에서는 이번 학술대회의 무게와 전문성과 가치를 알리기 위하여 고녕가야선야회 대표, 지정스님, 이완영 대한사랑학술위원, 이하우 반구대연구소장, 장성규 양산역사문화진흥원장으로 구성된 발표자들의 발제문을 앞으로 4편에 걸쳐 상세하게 연재한다(2025 고녕가야복원학술대회 보도 1부 끝).
▲ 고녕가야 선양회 김미경 사무차장이 이날 발표회 사회를 맡았다. 자료: 삼태극
▲ 발표 시작에 앞서 국민의례가 있었다. 자료: 삼태극
▲이날 발표회 방명록에 서명한 참석자들을 헤아려 본 결과 19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 삼태극
▲ 발표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경향각지에서 온 참석자들이 방명록 서명과 다과를 나누었다.
▲문경지역 차 모임인 새재다리원 차모임에서 다과와 차, 떡 등을 준비하여 참석자들을 따듯하게 맞이 하였다. 자료: 삼태극
▲ 새재다리원에서 마련한 다채로운 음식들. 자료: 삼태극
▲ 새재다리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 문경인터넷뉴스 대표 이민숙님. 국산 말차를 참석자들에게 대접하면서 환하게 웃으셨다. 자료: 삼태극
▲고녕가야국 함창 김씨 대종회에서 축하 화환을 보냈고 참석자들 모두에게 종친회 글이 새겨진 고급 볼펜을 선물하였다. 자료: 삼태극
▲김태은 선생이 상주 아리랑등을 가야금으로 연주하여 학술회를 풍요롭게 하였다. 자료: 삼태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