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학자, 윤내현 전 교수 별세

평생을 민족 고대사 복원에 바쳐

이덕일 교수 추모, 고인 명복 빌어

민족사학에 식민사관 청산 길 제시

▲ 윤내현 전 교수가 서기2025.06.29. 별세하였다. 자료: 유튜브 '문자와 역사 tv' 발췌.

윤내현 전 단국대학 교수가 서기 2025.06.29. 향년 86세(1939~2025)를 끝으로 돌아가셨다.

고인은 파킨슨병으로 오랫동안 투병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 윤내현 교수는 민족사 특히, 민족 고대사를 발굴하고 반듯하게 정리하여 민족정기를 올곧게 바로 세우는데 평생을 바치셨다.

고인의 대표적인 저서는 국민 애독서로 알려진 『고조선 연구』다. 우리 머리 역사를 알고자 하는 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야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민족사학계와 각계각층의 시민들은 부고 소식이 전해지자 깊은 슬픔 속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민족사학계를 대표하는 추모사를 그의 얼굴책에 올렸다.

▲ 고인의 저서들. 자료: 코리아히스리타임스.


다음은 그의 추모사이다.

[ 윤내현 교수를 추모함

이덕일

1.

윤내현 교수께서 2025년 6월 29일 밤 소천하셨다. 윤내현 교수는 역사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역사연구에 한 획을 그은 학자셨다. 1939년 해남 윤씨 남인 명가의 후예로 태어나 단국대 사학과에서 학사와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1979~1981년 하버드대학교 동아시아역사언어학과에서 수학했다. 윤교수의 첫 저서가 상왕조사(商王朝史:1978)인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중국 고대사 전공자였다가 하버드옌칭도서관에서 기자(箕子)를 비롯해 수많은 한국 고대사관련 사료를 보고 한국사 연구에도 천착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 남한 역사학계의 고조선관이란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왜곡하고 조작한 고조선관을 그대로 추종하는 수준이었다. 고조선 강역은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평안남도 일대의 소국이라는 것이었다. 윤교수는 하버드옌칭 도서관에서 북한의 리지린이 1962년 출간한 『고조선연구』도 보게 되었다. 리지린은 1961년도 북경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인 『고조선연구』에서 방대한 중국사료를 섭렵해 고조선의 서쪽 강역이 서기전 5~4세기까지는 지금의 하북성 난하까지 이르렀고, 연 장수 진개에게 일부 영역을 빼앗긴 후인 서기전 3~2세경에는 지금의 요녕성 대릉하까지 이르렀다고 서술했다.

윤교수가 귀국해서 중국의 고대 1차사료를 바탕으로 고조선사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자 한국 강단사학계, 곧 조선총독부 황국사관 추종학계에서 격렬하게 반발했다. 물론 사료로 말하는 역사학의 방법론에 따르면 윤교수가 맞고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한국 역사학계가 틀렸다. 그러나 1984년 윤교수의 논문 발표 자리에서 윤교수의 표현에 의하면 ‘대교수’라는 사람이 책상을 마구 치면서 “영토만 넓으면 좋은줄 아느냐”고 호통쳤다는 일화처럼 한국 역사학계는 그때나 지금이나 학문을 하는 학자집단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 역사관을 선전하는 정치집단에 불과했고 윤교수는 숱한 시련을 겪었다.

윤교수는 2015년 재출간한 『고조선연구(만권당)』 머리말에서 “한국사에서 고조선(단군조선)만큼 시련을 많이 겪은 부분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한민족의 시련과 궤를 같이 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윤교수 자신의 인생궤적과도 일치하는 말이다. 현재 한국의 숱한 대학교 사학과 중에서 윤교수의 학설을 계승하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은 이 시련이 현재진행형임을 말해준다.

2.

한 십여 년 전 필자는 동료 연구자들과 윤내현 교수와 고려대학교 최재석 교수가 함께 하는 강연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었다. 윤교수는 그때 이미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쉽지 않을 정도로 병세가 완연했지만 학문동지인 최재석 교수를 만나 반가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최재석 교수는 자서전 『역경의 행운』에서 “학문하는 사람 가운데 나만큼 고통을 겪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윤내현 교수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비단 윤내현·최재석 교수뿐만 아니라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친일 역사학이 아직도 주인인 것처럼 큰소리치는 한국 사학계의 풍토에서 역경은 일제 식민사학에 맞서는 학자들이 걷는 숙명같은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을 거듭 언급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겠다고 다짐했다. 친일하면 3대가 흥하는 대표적인 동네가 역사학계라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식민사학자들은 1980년대 윤내현 교수가 리지린의 『고조선연구』 등 북한서적을 읽은 ‘간첩’이란 이유로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 신고했고 윤교수는 안기부의 조사까지 받았다. 윤교수는 서기전 3~2세기경에도 고조선의 서쪽강역은 하북성 난하까지였다는 것으로 북한 리지린의 주장과 달랐음에도 남한 역사학자들은 윤교수를 간첩으로 몰았다. 상대학설에 대한 매카시즘, 빨갱이 사냥이란 파시스트적 행보가 남한 역사학계가 광복 80년 동안 주류의 위치를 차지하는 핵심기술이었다. 아직도 이땅의 주인으로 행세하는 친일·반통일분단의 역사학이 이 정권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계속 주류의 위치를 차지하는지가 이 정권 성패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부디 고통으로 점철되었던 이승을 떠나 저승에서는 단군 성조(聖祖)를 필두로 백암 박은식, 석주 이상룡, 단재 신채호, 무원 김교헌 선생 등 우리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애썼던 순국선열들에 환대를 받으며 영면하기를 빈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newhis19

▲ 고인은 투명 중에서도 민족사 연구를 계속하였다. 자료: 코리아히스토리타임스.

고인은 서기 2015.10.13. 코리아히스토리타임스와의 대담에서 민족사학이 나아갈 길과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이 지배하는 역사학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지혜를 가르쳐 주셨다.

[“역사발전의 원동력은 만남이다. 이때 중요한 게 스스로를 잘 아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만남 자체에 역동적 힘이 생길 수 없다. 먼저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게 급선무다. 그래서 우리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보면서 세계적 보편사와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이런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도권 학자들에 휩쓸리지 말고 다양한 연구자들이 서로 토론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서 다양한 분야의 연구 결과를 끌어내야 한다. 제도권 학자들도 선배 학자들에 매달리지 말고 비판을 하고, 비판하는 이론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장례 절차는 다음과 같다.

빈소

삼성서울병원장례식장 3호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로81 (일원동, 삼성의료원)

발인

2025년 07월 02일(수) 07시 30분

화장

서울추모공원 (09시 10분)

장지

천안공원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