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병상(시사평론가)
한반도는 사회 경제로나 한 덩어리, 분할 불가
일 관동군 쉽게 패배, 소중 막으려 38선 분할
인천, 서울까지 내려온 소련군, 38선 이북 후퇴
미군, 소련군이 정리한 한반도 남쪽 공짜로 점령
태극기 아닌 성조기 올려 점령군임을 확인
▲ 두 대령은 툴툴거리면서 30분 만에 벽걸이 지도를 놓고 중간쯤 그어버렸다. 한 많은 38선이다!
우방(友邦), 미국의 두 번째 배신(背信) 2
해방되기 5일 전인 1945년 8월 10일 펜타곤 어느 사무실에 준장 몇 명이 성명서를 들고 와 대령들에게 '우리는 한국을 분할해야 한다. 어느 곳을 분할할 수 있겠는가?' 물었다.
극동에서의 경험이 있는 한 대령이 그의 상관들에게 항의하였다. '말도 안 됩니다. 한국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하나의 단위입니다. 분할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장군들은 분할하라고 했고 대령은 불가하다고 했다.
그러자 장군들은 육군성 일반참모본부의 딘 러스크 대령과 찰스 본스틸 대령에게 강압적으로 지시하였다. '우리는 한국을 분할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은 오늘 오후 4시까지 반드시 끝내야 한다!'
그리하여 두 대령은 툴툴거리면서 30분 만에 벽걸이 지도를 놓고 중간쯤 그어버렸다. 한 많은 38선이다! 민족을 분단시키고 장차 동족상잔 6, 25동란의 씨앗이 이렇게 해방되기 5일 전에 심어져 버렸다!
1945년 8월 상순경 당신들은 장기전에 지쳐 있었고, 100만 관동군과 싸우면 1년 이상 소요될 뿐 아니라 100만 이상의 희생자를 낼 수밖에 없다는 판단 아래 소련에 관동군을 상대해 참전하라 권해놓고 600마일 이상 떨어진 오키나와와 필리핀을 잇는 선에서 관망만 하고 있지 않았는가?
일본은 한국을 발판으로 100만 관동군이 당신들과 최후 일전을 준비했었고, 그런데 소련군이 참전하자 무장 독립운동단체들이 앞장섰으며 그 용맹하던 관동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패퇴했으며 8월 10일에 옹기와 나진을 점령하고, 8월 14일에는 청진과 나남에, 16일에는 원산에 상륙하였다.
관동군이 이리 쉽게 물러날 줄 모르고 관망하던 당신들을 똥줄이 타서 부랴부랴 대중, 대러 방어막 마련을 위한 한반도 분할지배전략을 세우고 38선을 그었으며 소련에 제안하자 미군과 부딪치기. 꺼리던 소련도 받아들여 이미 인천과 서울까지 진주한 소련군을 38선 이북으로 후퇴시켰다.
그리고 당신들은, 원폭 투하하지 않아도 항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 교민까지 포함된 수많은 민간인을 살상하고 정작 싸워야 할 관동군은 소련에 떠넘기고 구경만 하다가 뒤늦게 숟가락 얹으려고 해방된 지 24일이나 지나서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으로 인천항으로 기어들어 오면서, 항복한 일본군 호위를 받았다.
해방군인 줄 알고 환영나갔던 우리 인민들은 일본군의 사격으로 사망했다. 해방된 조국에서도 패전국 군인의 총탄 세례를 당신들은 허용했다. 그리고 중앙청의 일장기를 내리고 태극기 대신 성조기를 올렸고 일제 치하보다 더 악랄한 미군정 3년을 친일파들과 함께 이끌며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다!
(정작, 침략국 일본에선 반발로 못 펼치고 만만한 침략당한 한반도 남쪽에서만...)
이렇게 피지배 국가를. 동강 내고, 지배 세력을 동원해 피압박자를 압박하는 당신들이 세계 평화를 수호한다고?
관세 올리라고?
방위비 더 주라고?
주한미군을 다용도로 쓰겠다고?
배신 그만 때리고 캘리포니아로 돌아가서 귤 농사나 지으시라!
지구상에서 영원한 제국은 없으니.
출처: https://www.facebook.com/choebyeongsang.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