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헌동(김해근대역사위원회 위원장)

현행 국사 교과서 철령위를 안변, 강원도 일대로

명사지리지와 국내 문헌은 심양 동남쪽으로 증언

고려말 조선초 국경은 만주 요양에서 심양 축선

▲고려는 말기 까지 만주 요양과 심양, 공험진까지 이어지는 북방국경선을 가지고 있다. 자료: 삼태극 제작


철령위(鐵嶺衛)와 고려의 북계(北界)는 어디에 있었을까

국사교과서에는 철령위가 함경남도 안변군과 강원도 회양군에 있는 철령 일대에 있는 것으로 표시하고 있다. 이것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만든 역사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 사실일까? 역사선생들은 역사교과서에 나타난 철령위의 위치가 맞다고 교육하는 것일까?

명나라의 황제 주원장이 1387년(우왕 13) 12월에 철령위 설치를 지시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고려는 즉각 명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철령 북쪽부터 공험진(公嶮鎭)까지가 오랫동안 고려의 영역이었음을 주장하며, 철령위 설치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였다.

명나라가 이를 거부하자, 우왕은 직접 평양에 머물면서 전국에서 군사를 동원하여, 최영을 팔도 도통사로, 조민수와 이성계를 각각 좌우군도통사로 삼아 요동 정벌을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함으로써 요동 정벌은 중단되었다.

국사 교과서에는 철령위의 위치를 함경남도 안변에 있는 철령에 있었던 것으로 표기했지만 정작 철령위를 설치한 주체인 명나라의 기록을 보면 전혀 다르다. 아래의 글은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의 칼럼'[강동 6주를 찾아서 ①] 압록강 남쪽인데 강동 6주?'에 있는 것이다. 영토주권을 확립하고자 하는 관점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명사> 권 41 '지리지 2'에 철령위의 기록이 있다. “철령위는 홍무(洪武) 21년(1388년) 3월에 옛 철령성에 설치했으나 26년(1393년) 4월에 옛 은주(嚚州)의 땅으로 옮겼다. 곧 지금의 치소이다. 서쪽에는 요하가 있으며 남쪽으로 범하(泛河)가 있고 또 남쪽에 소청하(小清河)가 있는데 모두 요하로 흘러 들어간다. 또 남쪽에 의로성(懿路城)이 있는데 홍무 29년에 의로천호(懿路千戶)를 이곳에 두었다. 또 범하성(范河城)이 위(衛)의 남쪽에 있으며 범하성(泛河城)이라고도 한다. 정통(正統) 4년(1439년)에 범하천호(泛河千戶)를 이곳에 두었다. 동남쪽에 봉집현(奉集縣)이 있는데 곧 옛 철령성이며 고려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홍무 초기에 현을 설치했으나 폐지했다. 또 함평부(鹹平府)가 있는데 원나라 때의 직예요동행성(直隸遼東行省)이다. 지정(至正) 2년(1342년)에 항복하여 현이 되었으며 홍무 초에 폐지하였고 남쪽으로 도사(都司)와의 거리는 240리이다.”

1388년 철령위는 철령성이란 곳에 설치했는데 그 철령성은 봉집현이란 곳에 있었고 그곳이 당시 고려와 명나라 사이의 국경이었다는 뜻이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 “봉집현은 당나라 때 발해가 설치했으나 원나라 때 폐지되었고 명나라에서는 봉집보(奉集堡)라 했다. 오늘날 요령성 심양현 동남쪽 45리에 있다.(奉集縣唐時渤海置元廢明爲奉集堡在今遼寧省瀋陽縣東南四十五里)”

봉집현은 심양시 동남쪽 45리 지점에 있었다는 뜻이다. 명나라 때 이곳은 봉집보란 이름으로 바뀌는데 실제로 심양시 소가둔(蘇家屯)구에 그 지명이 남아 있다. 바로 이 부근에서 고려와 명나라 양국 간의 국경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철령위를 설치한 주체인 명나라 측에서 직접 남긴 기록이다.

고려의 영토가 압록강 너머 요령성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사서에서도 교차 검증이 된다. <고려사> 권 135 열전 48에 기록된 우왕(禑王) 9년(서기 1383년)의 기록을 보면 이성계가 우왕에게 국경 수비에 대해 건의한 내용이 있다. 해당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태조 총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두 사서에 공통적으로 기록된 내용은 이렇다.

“북계(北界)는 여진(女眞), 달달(達達), 요심(遼瀋) 등의 땅과 맞붙어 있어 실로 국가의 요충지이니, 비록 아무 일이 없을 때라도 반드시 군량을 비축해 두고 군사를 양성해 불의의 사변에 대비해야 합니다.(北界與女眞達達遼瀋之境相連實爲國家要害之地雖於無事之時必當儲糧養兵以備不虞)”

1383년 이성계는 고려의 북계가 요심(遼瀋)과 맞붙어 있다고 기록했는데, 여기서 요심이란 요령성의 요양시와 심양시를 말한다. 신의주까지가 북계로 나타난 국사 교과서 지도대로라면 이 내용은 이상할 수 밖에 없다. 심양에서 신의주까지 직선거리는 대략 210km 정도로 서울에서 경상북도 성주군까지 거리다. 이런 곳을 ‘맞붙어 있다’고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려의 북계는 요령성 요양시와 심양시 가까운 곳까지 이어져 있었고 <명사> 지리지에 나온 기록이 이를 보충해준다. 해당 기록은 고려 멸망 직전 상황의 기록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1392년 고려 멸망 당시까지 고려 영토는 현재의 압록강을 넘어 요령성 요양시와 심양시 인근까지 뻗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고려의 북계와 동계가 바르게 정립된 역사지도로 역사주권과 영토주권을 찾는 역사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관점에서 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