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효백(전 경희대학 교수)
일본 전자사전에 ‘동해’, ‘일본의 이칭’이라 적시
1992년 정부, 일본해와 동해를 병기해달라 요청
한국해, 고려해, 조선해 등 국제 관습 외면한 짓
학계, 언론, 정부의 무책임이 낳은 매국적 행태
이름은 그 나라 깃발,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서양 고지도 318점이 증거하고, 포르투갈·프랑스·영국·미국이 기록한 ‘Corea Sea’는 명백한 국제적 관습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은 이 증거를 스스로 묻고, 일본의 별칭을 들고 국제사회에 나아갔다.
<동해, 일본의 별칭을 부르며 스스로를 잃어버린 한국>
“동해(東海)는 일본의 별칭이다.”
이 간단한 문장이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일본의 거의 모든 사전은 그렇게 기록한다. 쇼가쿠칸(小学館)의 《디지털 대사전》에는 ‘동쪽 바다’, ‘동해도’, ‘일본의 이칭’이라는 설명이 명확히 쓰여 있다. 일본인에게 동해란, 단순한 해역의 이름이 아니라 곧 자신들의 나라를 가리키는 상징이었다. 그런데 지난 30년 동안 한국 정부와 학계, 언론은 바로 그 이름을 일본해(Sea of Japan)의 대안 명칭으로 내세워 왔다. 이 얼마나 자기모순적이고, 자해적인 역사인가.
1. 왜곡된 전략의 시작
1992년, 한국 정부는 유엔 지명표준화회의(UNCSGN)와 국제수로기구(IHO)에 공식 요청을 제출했다. 일본해 단독 표기 대신, 일본해와 동해를 병기해 달라는 요구였다. 표면적으로는 일본의 독점을 견제하고 한국의 권리를 주장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동해(East Sea)’라는 일본의 별칭을, 한국 스스로 국제 무대에 들고 나가 “이것도 우리 것”이라고 외친 꼴이 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국해(Corea Sea)’, ‘Corea Gulf’, ‘고려해’, ‘조선해’ 등 역사 속에서 이미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했던 이름들을 송두리째 외면했다는 점이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제작된 서양 고지도 318점 이상이 ‘Corea Sea’, ‘Sea of Corea’, ‘Gulf of Corea’를 분명히 기록했다. 이는 단순한 지도 표기가 아니라 국제적 관습의 증거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강력한 무기를 버리고, 감정적으로만 ‘동해’를 부르짖었다.
2. 국제사회의 냉정한 반응
그 결과는 참혹하다. 국제사회는 우리의 주장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해는 여전히 국제 표준으로 쓰인다. 동해 병기는 일부 지도 제작사나 소수 문서에서만 제한적으로 등장한다. 그것마저도 대부분은 ‘Sea of Japan (East Sea)’라는 식으로 일본해를 우선 표기한 뒤 괄호 속에 덧붙인 변주에 불과하다. 한국이 30년간 쏟아부은 외교적 노력은 사실상 성과가 없었다.
더 큰 문제는 국제사회에 심어진 인식이다. “한국은 자기 바다의 이름을 스스로도 정하지 못한다.” 이는 우리에게 치명적인 약점이다. 한국해라는 정당한 이름을 외면하고, 일본의 별칭을 주장하면서 정체성과 권리를 스스로 훼손해 버렸기 때문이다.
3. 이름은 깃발이다
바다 이름은 단순한 지리적 호칭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주권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언어적 깃발이다. ‘Gulf of Mexico’가 멕시코의 배타적 권리를 강화하고, ‘Gulf of Thailand’가 태국의 내해로 작동하는 것처럼, 이름은 곧 권력이다. 그런데 한국은 스스로의 깃발을 내리고, 상대의 깃발을 흔들며 “이것이 우리 것”이라 주장했다. 이 모순된 전략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비유하자면 이렇다. 자기 집 대문에는 ‘한국해’라는 현판이 오래 전부터 붙어 있었다. 수많은 손님들이 그것을 보고, 그 집이 누구의 것인지 알았다. 그런데 주인은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대신 옆집 간판에 적힌 별칭을 떼어 와 자기 집 대문에 걸고는 “이것도 원래 내 것이다”라며 주장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당연히 의아해했다. “왜 자기 집 간판을 놔두고, 남의 집 간판을 달았을까?” 결국 신뢰를 잃는 건 주인 자신이었다.
▲쇼가쿠칸(小学館)의 《디지털 대사전》에는 ‘동쪽 바다’, ‘동해도’, ‘일본의 이칭’이라는 설명이 명확히 쓰여 있다.
4. 학계와 정부, 언론의 무책임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누구의 책임인가? 우선 학계의 책임이 크다. 학자들은 수백 점의 고지도가 남긴 ‘한국해’ 증거를 외면했다. 국제법과 역사적 관습의 무기를 분석하기보다, 일본해 대 동해라는 단순 대립 구도를 만들고 그 안에 안주했다.
정부 또한 무책임했다. 외교 전략은 긴 호흡의 투쟁이어야 하지만, 정부는 단기적 성과에 집착했다. 마치 병기 요구가 현실적 성과인 것처럼 포장했고, 그로써 대중의 감정을 달래는 데 그쳤다.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쓰며 국민적 분노를 자극하는 데 급급했다. 결국 모두가 합심해 잘못된 방향으로 달려간 셈이다.
5. 정체성의 자해
한국인의 정체성은 이 과정에서 왜곡됐다. ‘동해’라는 이름은 일본의 이칭이다. 그 이름을 외치는 순간, 우리는 일본의 문화적 그림자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의 진짜 이름, ‘한국해’는 묻혔고, 정체성은 희미해졌다. 이보다 더 참담한 자해가 또 있을까?
더구나 ‘한국해’라는 이름은 단지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 서양 고지도 318점이 증거하고, 포르투갈·프랑스·영국·미국이 기록한 ‘Corea Sea’는 명백한 국제적 관습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은 이 증거를 스스로 묻고, 일본의 별칭을 들고 국제사회에 나아갔다. 이는 자해이자 자살이었다.
6.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 동해 병기 전략은 실패했다. 더 나아가 그것은 자해적 선택이었다. 우리의 정체성과 국제적 입지를 스스로 갉아먹은 역사였다.
이제라도 되찾아야 할 것은 단순하다. 한국해(Corea Sea), 우리의 진짜 이름이다. 수백 년 동안 지도 위에 새겨졌고, 국제사회가 기록한 그 이름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국제법과 역사적 증거에 기반한 전략이고, 국제사회에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잃지 않으려면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잊었던 이름을 되찾는 순간에만, 진정한 회복이 시작된다. 동해라는 일본의 별칭을 고집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일본의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론
한국은 지난 30년 동안 잘못된 전술에 매달려 스스로를 속였다. 일본의 별칭을 붙잡으며 정체성을 왜곡했고, 국제사회에는 혼란과 불신만을 심었다. 이 자해적 역사를 끝낼 때가 왔다. 바다를 되찾는 길은 명확하다. 우리 바다를 우리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
그 이름은 바로 ‘한국해’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ganghyobae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