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상(시사평론가)
조선의 호의에도 평양시민을 살해한 야만인 미국
서기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서로 돕자고 약속
‘1905년 카스라-태프트’ 밀약 일제에 조선 팔아넘겨
▲미국과 일본은 1905 카스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차지한다고 하였다.
우방(友邦), 미국의 첫 번째 배신(背信)!
우리의 선조 조선인들과 당신들과의 관계는 우호적이었다.
1853년 사우스 아메리카호가 일본 가려다 부산항에 10여 일 머물 때 함께 식사도 하고 식량과 물도 실어 주었고 1855년 1865년 당신 나라 배들이 표류할 때 역시 식량과 물을 제공했다.
선비의 유원지의(柔遠之義) 즉 먼 곳에서 온 사람들에게 최대한 관용을 베푼다는 정신 아래 그리 대했지만, 통상교역 요구에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그런데 대포를 2문이나 장착한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관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866년 8월 21일 대동강 만경대 한사정까지 올라와 감시하던 관리까지 억류하며 통상을 강요하자 국법으로 금하고 있어 못한다고 얘기하였다.
식량과 물을 줄 테니 돌아가라 일렀지만 마침 비로 불어난 대동강을 더 거슬러 올라가다 썰물에 그만 양각도에 좌초되었는데 평양 관찰사 박규수의 지휘 아래 민관이 돌팔매와 화살, 소총으로 공격하자 마구 대포를 쏘아대 평양주민 7명이 사망하고. 5명이 다쳤다.
이에 분노한 민관이 하나 되어 작은 배에 기름과 섶을 실어 셔먼호를 둘러싸고 근처 강물엔 식용유를 뿌려 불화살로 공격하여 승선한 23명 모두를 죽여버렸다(9월 5일).
자업자득이었다
이후 신미양요를 일으켰지만, 조선은 그리 만만하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청나라도 일본도 대포 몇 발에 놀라 개항했지만, 조선은 깡다구가 있었다.
그러다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의 계산된 중재로 마침내 1882년 5월 22일 제물포 선상에서 고종황제와 체스터 A, 아서 미국 대통령 사이에 14개 조항의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다.
제 1조에 “사후로 대조선국 군주와 대아미리가 합중국 백리세천덕(President) 및 그 인민은 각각 영원히 화평우호를 지키되 만약 타국이 불경모 하는 일이 있게 되면 일차 조지(照知)를 거친 뒤 필수 상조(相助)하여 잘 조처함으로써 그 우의를 표시한다.”라고 최혜국 대우를 명시하였다.
이후 23년이 흐른 1905년 7월 29일 도쿄 시바궁에서 당신네 나라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 특사 태프트 육군 장관이, 가쓰라 일본 외상에게 우리는 필리핀을. 접수할 테니 일본은 조선을 접수하라고 제안한다. 소위 '가쓰라-태프트밀약'이다!
그 공로로 태프트는 루즈벨트 이어 대통령까지 해 처먹고,
이렇게 혈맹이라는 당신들의 첫 배신이 시작된다!
그리고 조선은 그해 11월 17일 을사늑약을 시작으로 일제의 지배를 받아 말도 글도 못 쓰고 성씨까지 갈아치우며 총알받이 학도병으로, 일본군의 성 노리개로, 징용으로 초토화되었다.
타국의 침략이 있으면 같이 대응하자고 약조하고선 이렇게 당신들은 배신했다.
그래도 혈맹인가?
주한 미군이 우리를 지켜준다고?
방위비 더 주라고?
출처: https://www.facebook.com/choebyeongsang.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