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석현장(스님, 불교역사연구가)

밖에서 들어온 석가가 토속 미륵을 속이고 세상 차지

석가 세상이 되자, 세상에 도둑놈과 사기꾼이 득실거려

석가, 조선에 와서 천하제일 미녀 당금애기 사로잡기

탁발을 핑계삼아 부모, 오빠 뛰어넘어 당금애기 차지

▲삼불제석은 원래 삼신제석이다. 고려 때 불교가 국교로 받들고 세력이 커지니 무교에서 불교적인 모습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료: 석현장


삼불제석과 삼신이야기(1)

도솔천 하늘에 석가와 미륵이 살았다. 하루는 인간 세상을 위하여 누가 먼저 갈 것인지 내기하였다.

내기 방법은 선정에 들어 자기 무릎 위에 모란꽃이 먼저 피어난 사람이 인간 세상을 가기로 하였다. 석가가 한쪽 눈을 살짝 뜨고 보니 미륵의 무릎에 모란이 피어나고 있었다.

인간 세상에 먼저 가고 싶은 석가는 모란꽃을 슬쩍하여 자기 무릎에 꽂고 인간 세상에 오게 되었다. 그래서 석가의 세상에는 도둑놈과 사기꾼이 많다고 한다.

미래에 미륵 세상이 오면 도둑놈도 사기꾼도 독재자도 머저리도 모두 제도 받아 선인이 되어 살기 좋은 세상이 온다.

우리 무속이 전해주는 석가와 미륵의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석가는 하늘에서 시준이란 벼슬을 살다 왔기 때문에 인간 세상에 와서 시준님으로 불린다. 세존을 무속표현으로 시준이라 부른다.

시준님은 하늘나라에 살다가 내려와 서천 개비랑국에 태자의 몸으로 태어났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속세에 염증을 느껴 황금산에 들어가서 풍류를 즐긴다.

6년간 도를 닦고 깨달음을 얻어 산을 내려오니 행색은 거지꼴인데 얼굴이 환하고 후광이 비쳤다.

시준님을 한 번만 보면 사람들이 따랐다. 인기 최고였다. 개비랑국은 카필라국이 되고 설산은 황금산으로 바뀌었다.

이 세상 저세상을 두루 다니던 시준님의 발걸음이 해동 조선에 이르렀다. 해동 제일의 미녀가 당금애기라는 소문을 듣고 그녀를 꾀기로 마음먹고 집을 찾아갔다. 그날 당금애기 집에는 부모님은 유랑가시고 아홉 명이나 되는 오빠들은 출타 중이었다. 시준님은 문 앞에서 목탁 치며 구성지게 염불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서천땅 금불암 화주승이 당금애기께 시주를 청하나이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크고 청아하여 대문을 내다보니 키가 크고 환한 청년이 있었다.

스님, 어떤 쌀을 드릴까요.? 아버지 먹던 쌀을 드릴까요? 그 쌀은 누린내가 나서 안 되겠소이다. 그럼 어머님 쌀을 드릴까요? 그 쌀은 비린내가 나서 안 되겠소. 그러면 오빠들 쌀을 드릴까요.? 그 쌀은 땀내가 나서 싫소. 당금애기씨가 먹던 쌀을 손수 퍼다 주시오.

탁발승 주제에 뻔뻔하고 당당함이 말할 수 없었지만 당금애기는 시준님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당금아기는 자기 쌀통에서 정성껏 쌀을 퍼서 시준님의 바랑에 담았다. 그 순간 바랑의 바닥이 터지면서 공양미가 땅바닥으로 쏟아졌다. 당금애기 깜짝 놀라 빗자루 들고 와서 쓸어 담으려 하는데 시준님의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처님께 올릴 마지 쌀인데 빗자루로 쓸어 담으면 되겠소. 저 버들가지로 젓가락을 만들어 한 톨씩 주워 담으시오. 시준님의 마력에 빠진 듯 당금애기는 젓가락으로 쌀 한 알씩 주워 담았다.

마지막 세 알은 시준님이 입에 넣어 줘서 그대로 삼켰다. 쌀 한 톨씩 젓가락으로 줍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말았다.

“해가 넘어갔으니 오늘은 이 집에서 쉬어가야 하겠소.” 당금애기도 싫지는 않았다. 시준님은 아버지방은 누린내, 어머니방은 비린내, 오빠방은 땀내가 나서 잘 수 없으니 당금애기 방에 병풍을 치고 함께 자게 되었다.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리는 당금애기를 시준님은 주문을 외워 금방 잠들게 하였다.

잠에 빠진 당금애기는 꿈을 꾼다. 오른 어깨에 달이 보이고 왼쪽 어깨에 해가 보이는 귀한 사람이 구슬을 세 개 건네준다. 광채 나는 구슬 세 개를 받아 황홀하게 들여다보다가 입에 넣고 삼켜버렸다. 잠에서 깬 당금애기는 시준님을 깨우면서 꿈 얘기를 하였다.

얘기를 묵묵히 듣고 난 시준님은 말했다. “이제 곧 아기를 낳을 꿈이니 부디 잘 키우시오.”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 버린다.

무속의 그림들을 “환幻”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림 그리는 이들을 환쟁이라고 한 것일까?

인도에서는 우리가 보는 오감의 세계를 마야라고 부른다.

환이라는 뜻이다.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기 위해 고통받는 세계를 사바세계라고 부른다.

삼불제석 이야기를 통하여 불교가 우리 무교를 어떻게 포용하고 무교가 새로 들어온 불교를 어떻게 수용했는가를 보여준다.

삼불제석은 원래 삼신제석이다. 고려 때 불교가 국교로 받들고 세력이 커지니 무교에서 불교적인 모습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hyunjang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