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헌동(김해근대역사위원회 위원장)
고대 일본은 한 땅의 유물, 언어, 문화로 만들어져
한국 근세사에 일본 역할 부정할 수 없듯이
고대 일본사도 한 땅의 역할 없이는 설명 불가
일본서기, 가야, 백제가 정복한 사실 은폐
거꾸로 야마토 왜가 한 땅 4국 지배했다고 날조
▲ 일본서기(편집인 주). 자료: https://isuzujuku.org/course/
<일본서기>는 위서(僞書)인가 아닌가
<일본서기>를 읽으면 어떤 것은 왜곡하고 조작한 역사소설이라는 판단이 든다. 그래서 일본서기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최재석 박사의 관점과 이원희 변호사의 "일본서기는 위서다"는 관점을 고찰해 보았다.
이원희 변호사는 '일본어는 고대에 한국에서 건너간 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을 풀기 위하여 일본 고대어와 고대사를 연구하였다. 그 결과 5~7세기에는 가야와 백제가 순차로 왜를 지배하였다는 결론을 내린다.
2022년 <속국 왜국에서 독립국 일본으로> 책 출간에 이어 2024년 <일본서기는 위서(僞書)다>는 책을 출간하였다. 아래 글은 이 책에 있는 것이다.
[19세기 이후의 한국 근세사를 서술하려면, 일본의 역할을 빼놓고는 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일본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5~7세기의 고대사는 어떨까? 근세사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즉 일본 고대사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가야와 백제 등 고대 한국 여러 나라에서 건너간 기마문화, 스에키라 불리는 획기적으로 발전된 토기, 환두대도 등의 무기. 귀걸이와 금동관 등의 장신구, 무덤의 형식인 횡혈식 석실, 불교와 한자문화 등등, 고대 한국의 문화와 한국에서 건너간 도래인의 역할을 빼놓고는 서술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무렵의 고대 한국사를 쓴다고 할 때는, 왜를 제외하고도 별다른 문제나 아쉬움 없이 쉽게 써 내려갈 수가 있다. 왜의 한국에 대한 영향력은 지극히 미미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발달한 문화뿐만 아니라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으로 건너와 지배층이 되어, 한국인들을 지배하고 통치한 바 있다.
고대의 왜지에도 이와 동일한 현상이 벌어졌다. 즉 한국의 문화만 왜로 건너간 것이 아니라, 수많은 한국인들이 집단으로 조직적으로 도왜하였고, 그들이 왜왕과 지배층이 되어 왜인들을 통치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서기>는 이와는 정반대이다. 즉 왜가 백제와 가야의 여러나라와 신라, 나아가 고구려마저도 지배하였던 것으로 되어있다.
이는 사실을 180도 뒤집어, 붓끝의 창작으로 가공의 역사를 날조하였던 것이다. 근세의 한국이 일본을 점령하고 지배하였다고 강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일본서기>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출현한 창작 역사소설집이다. 가야와 백제가 왜를 지배한 역사를 삭제하고 창작으로 꾸며낸 왜왕으로 이루어진 허구의 역사를 날조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이 <일본서기>는 출발부터 창작된 위서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거기에다 여러 사람이 가필, 변작하여 더욱 흉측한 모습으로 변질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임나일본부이다. 이 책을 포함한 필자의 졸저들은 모두 이에 관한 수많은 증거와 논의를 모은 것이다.
이렇듯 8세기 왜국 백제인들의 생존방편으로 창작된 위서 <일본서기>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 한국인들의 고대사 서술에 아직도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참으로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일본서기>의 본질을 직시하여, 더 이상 이 위서의 망령에 농락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임나일본부설의 근거인 신공황후 신라정복설의 <일본서기> 기사를 보면 신공황후가 신라를 쳐들어 갈 때 접신이 되어 유복자를 임신한 상태로 아기가 막 나오려 하니까 돌을 허리춤에 끼우고 주문을 외워 출산을 늦춘다. 바다를 건너가니까 신라가 밀물에 잠겨버린다. 신라가 밀물에 잠기자 신라왕이 놀란 나머지 알아서 항복한다.
소설같은 이야기인데 1920년 <조선총독부 국사 보충교재>에는 "신공황후가 신라를 정복한 다음 일본부를 임나에 설치하고 삼한의 영토를 다스렸다."는 지침으로 교육하라고 하였다.
조선총독부 관변학자들과 가야사 학계에서는 임나를 김해나 창원, 대가야인 고령으로 비정하였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중에는 지금도 임나를 김해로 하여 임나일본부설을 그대로 교육하는 학교들도 있다.
일본의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일본사회의 보편적인 역사관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현행 일본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에는 임나일본부설이 긍정적인 관점으로 기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