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정락(미학자)

 

난생설화의 인물은 초월적인 존재감을 수식해

천생난적 설화와 인생난적 설화로 나누어져

김수로와 박혁거세는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고구려 시조 동명왕은 유화가 난 알에서 나와

이는 왕권신수설, 절대성 강화하는 신화적 장치

단군신화는 모계사회에서 남성사회로 이동 의미

 

<난생신화의 (은폐된) 이데올로기>

우리의 역사에서 최초의 왕들 중 몇몇은 알에서 태어났다. 소위 ‘난생설화(卵生說話)’가 인물의 특별하고 초월적인 존재감을 수식해준다.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알에서 태어나는 과정이나 방식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자연 천생난적(天生卵的)이고, 다른 하나는 인위 인생난적(人生卵的)의 차이다.

전자는 알이 하늘이나 신으로부터 내려준 것이고, 후자는 여성이 알을 낳은 것이다. 이 차이는 탄생과정에서 인간의 개입 여부에 달렸다.

시대적인 순차로 따져보면, 인생난적이 먼저다. 고구려의 태조 동명왕은 하백의 딸 유화가 해모수와의 은밀한 연애를 통해 알을 낳았고, 그 알에서 태어난 존재다.

여성의 자궁을 빌려 태어나긴 했지만, 그 연관성은 느슨하다. 이 느슨함을 완전히 끊은 것은 천생난적의 탄생이다.

가야의 김수로와 신라의 박혁거세는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태어난, 그야말로 천애의 고아들이다. 남성은 차치하고 여성하고도 무관한 탄생이다.

난생설화는 과거 부족국가의 탄생을 은유하는 공통적인 서사다. 왕권의 신수설이나 절대성을 강화하는 신화적 혹은 서사적 장치이다.

이 초현실적인 현상을 끌어와 지배이념의 토대를 삼았다는 추론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거기에 의문이 하나 생긴다.

이 난생설화는 다른 창조 신화나 설화에 비해 모성을 부정하는 정서와 의도가 담겨있다. 모든 초기 문명이 설명하는 국가와 권력의 탄생에는 어머니(모태)가 존재했었다.

중국에는 여와나 이집트에는 누트와 이시스가 있고, 그리스 신화에도 가이아가 있어, 이로부터 수많은 신들이 배태되었다.

모계사회와 대모신의 숭배에서 비롯된 창조신화가 이 난생설화에서는 부정된다는 뜻이다.

나는 그래서 이 난생설화가 모계사회에서 가부장 사회로 이전하는 시기에 즈음하여 등장한 것이라 본다.

예컨대, 공동체의 지배구조 혹은 권력의 중심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이동하면서, 모성에 의한 창조나 탄생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단군신화나 백제의 온조왕 등에서는 이런 난생설화가 적용되지 않았지만, 다른 방식으로의 - 이를테면 천손 신화 - 남성 지배사회가 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니까 굳이 난생설화에 의지하거나, 그것을 통할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 이 그림은 한반도가 유일하게 천손 신화와 난생신화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참 특이한 나라다.
▲ 이 그림은 한반도가 유일하게 천손 신화와 난생신화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참 특이한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