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만 금기, 일본서기는 관대

조롱은 비판이 아니라 식민사관

같은 기준 없는 학문은 검열하는 짓

▲기경량이 '환빠' 조롱, 비난 바람을 타고 독립투사들의 역사관을 잇는 민족사학을 사이비역사학으로 낙인 찍기에 광분하고 있다. 자료: 삼태극

기경량(가톨릭대학 부교수)이 또 자신의 얼굴책에 최근 ‘환빠’ 타령하는 식민사학계와 이에 같이 거품무는 서구 사조 사대노예근성에 절은 얼치기들의 난동에 힘입어 단기고사와 더불어 단군세기를 싸잡아 비난, 조롱하였다.

그는 현재 식민사학의 본산, 한국고대사학회 소속으로 민족사학을 비난하는 전위대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를 비난하기 위해 단기고사를 끌어들여, 고대 단군조선이 기원전 수천 년 전에 만국박람회를 열고 각종 기계와 비행기, 잠수함을 발명했으며, 심지어 기원전 4세기에 ‘자본론’을 저술했다는 기록을 나열한 뒤 이를 조롱하였다. 그의 결론은 단순하다. 이런 문헌을 연구하자고 하는 것 자체가 “지성에 대한 모독”이라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과학적 이성과 합리성을 앞세운 비판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글이 문제인 이유는 내용보다 태도에 있다. 그는 단군세기와 단기고사에 등장하는 기록을 문자 그대로만 읽고 비웃는다. 상징, 신화, 과장, 후대의 덧붙임이라는 고대 문헌 해석의 기본은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다. 비판을 위한 분석이 아니라, 조롱을 위한 희화화에 가깝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잣대가 자기 나라 문헌에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기경량은 환단고기를 위서·불온서적·금서 취급하며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을 ‘환빠’라 낙인찍는다. 반면 일본 제국주의 시기 조선 침략으로 활용된 일본서기에 대해서는 “소설적 요소가 있지만 진실과 사실도 있다.”, “전향적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에 동조한다.

그러나 일본서기야말로 학문적으로 문제가 산적한 문헌이다. 7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일본’이라는 국호를 고대에 소급 사용하고, 고구려·백제·신라를 야마토왜의 속국으로 묘사하며, 천황가의 신성성을 위해 정치적 신화를 대거 삽입했다. 고고학과 금석문, 중국 사서와 수없이 충돌하는 연대와 서술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헌을 “비판적 활용이 가능한 사료”로 취급한다.

왜 이런 이중 기준이 가능한가. 일본서기의 신화와 허구는 ‘해석의 대상’이 되고, 환단고기의 기록은 ‘연구 자체가 금기’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기경량의 글은 학문적 비판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분석이 아니라 사상적 검열이며, 토론이 아니라 낙인찍기다.

고대 문헌에는 언제나 신화와 상징이 섞여 있다. 『사기』도, 『삼국사기』도, 『일본서기』도 예외가 아니다. 학자의 역할은 “이상하니 버리자”가 아니라, “무엇이 언제, 왜 그렇게 기록되었는가”를 따지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한민족 고대사를 다룬 문헌만 연구 대상에서 배제되고, 언급조차 ‘사이비’로 몰리는 현실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식민사관이 아직도 학계 깊숙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기경량의 글은 환단고기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오히려 자기 고백에 가깝다. 그는 같은 기준을 적용할 의지도, 일본 중심 사관을 의심할 용기도 없다. 그래서 그의 글은 고대사를 둘러싼 진지한 논쟁이 아니라, 식민사관의 생존 보고서처럼 읽힌다.

자기 나라 문헌을 연구하자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지성의 모독’이라 단정하는 태도야말로, 학문과 지성에 대한 진짜 모독은 아닐까. 고대사를 둘러싼 논쟁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출발점은 조롱이 아니라, 같은 기준과 열린 검증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기경량은 이슬람 율법을 철저하게 강요하는 아프칸 탈레반과 같이 식민사관 외에 다른 주장을 일절 허용하지 않고 짓밟은 역사탈레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