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헌동(김해근대역사위원회 위원장)

나철, 구국 투쟁 정치 좌절되자 종교 투쟁으로 전환

1906.01.15. 하늘에 굿하고 단군 모신 단군교 중광

1910.08. 단군교를 대종교로 바꾸고 대일전쟁 시작

일제 탄압피해 동 만주 화룡현으로 총본사 이전

나철 순교, 김교헌 역사복원, 서일 독립전쟁 지휘

홍익, 단국, 신흥대학 세워 국가 지도자 양성 추진

▲나철은 1909년 1월 15일 단군대황조신위(檀君大皇祖神位)를 모시고 제천의식을 거행한 뒤 단군교를 선포하였다. 자료: 삼태극


대종교는 청산리 대첩과 관련이 있는가

"대종교는 어떤 종교이고 청산리 대첩과 관련이 있는가?"를 질문하신 분이 있었다. 답변을 위해 고찰한 것을 칼럼으로 써 보았다.

이을호(전 국립광주박물관, 철학)가 집필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대종교(大倧敎)'를 참조한 것이다. 청산리 대첩의 지도자와 전투원들 대부분이 대종교 신도였음을 알 수 있었다.

대종교는 1909년 나철(羅喆)이 조직한 종교로 나철은 1863년 전남 보성 출신으로 29세 때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承文院權知副正字) 등을 지냈다.

정치적 구국운동의 좌절로 민족 종교운동으로 방향이 기울게 된 나철은 1909년 1월 15일 단군대황조신위(檀君大皇祖神位)를 모시고 제천의식을 거행한 뒤 단군교를 선포하였다. 이 날이 바로 중광절(重光節)로, 중광이라 함은 새로이 창교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고 있었던 교단을 중흥하였다는 의미이다.

교주로 추대된 나철은 교리를 정비하여 교단조직을 개편하고 교세확장에 주력하여 1910년 6월 서울에 2,748명, 지방에 1만 8791명의 교인을 확보하였다. 1910년 8월 단군교라는 교명을 대종교로 바꾸었다.

일제의 종교탄압이 심해지자 국외포교로써 교단을 유지하고자 1914년 5월 백두산 북쪽에 있는 청파호 근방으로 총본사를 이전하고 만주를 무대로 교세확장에 주력하여 30만 명의 교인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교세확장에 위협을 느낀 일제는 1915년 10월 종교통제안을 공포하여 탄압을 노골화하였다. 교단이 존폐위기에 봉착하게 된 1916년 8월 15일 분함을 참지 못하고 환인·환웅·단군의 삼신을 모신 구월산 삼성사(三聖祠)에서 자결하였다.

나철에 이어 제2대 교주가 된 김교헌(金敎獻)은 총본사를 동만주 화룡현으로 옮긴 뒤 제2회 교의회를 소집하여 홍범규칙(弘範規則)을 공포하고 군관학교를 설립하여 항일투사 양성에 힘썼다.

1919년 2월 독립운동지도자 39인이 서명한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해 발표하였고, 비밀결사단체인 중광단을 조직하여 북로군정서로 발전시킴으로써 무장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시켰다.

최고의 지식인이 맡았던 대사성과 규장각 부제학을 역임하고 <신단민사>와 <신단실기> 등 단군조선을 역사화 할수 있는 역사서를 저술한 김교헌은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은 민족주의 사학자였다.

1920년 10월, 대부분 대종교 신도로 조직된 독립군은 백포종사(白圃宗師) 서일(徐一)의 지휘 아래 대종교 신도인 김좌진·나중소·이범석·홍범도 등의 통솔을 받아 청산리 전투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일제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21년 경신대토벌작전을 전개하여 수많은 교도들을 무차별 학살하였다. 김교헌도 통분 끝에 병이 나서 1923년 단애종사(檀崖宗師) 윤세복(尹世復)에게 교통을 전수하고 사망하였다.

제3대 교주가 된 윤세복은 1945년 광복으로 귀국할 때까지 수많은 고난을 겪었다. 윤세복은 경남 밀양 출신으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에 대종교는 유교·불교·천도교·기독교·천주교 6대 종교 가운데 제1호 종단으로 등록되었고, 개천절을 국경일로 제정받았다.

대종교가 관련되어 설립된 학교로 홍익대학교·단국대학교·국학대학·신흥대학 등이 있다. 홍익대학교는 대종교 지도자였던 독립운동가 이흥수가 설립하였다. 단국대학교의 설립자인 독립운동가 장형은 대종교 원로원참의를 지낸 인사로 단국(檀國)이라는 교명은 단군과 애국을 줄인 것이다.

국학대학은 초대 이사장과 초대 학장 위당 정인보까지 모두 대종교 인물이었다. 신흥대학은 경희대학교 전신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이은 것으로 설립자인 초대 부통령 이시영은 대종교의 원로원장으로 선출되었던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