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상조(언론인)
88세를 일기로 선종한 프란시스 교황의 삶은 청빈 검소
한국에 와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위안부 할머니 위로함
이들의 고통에 중립은 없다며 진실과 정의의 편에 서
▲ 프란시스 교황이 2014.08.18. 한국을 방문한 가운데 세월화 참사 유가족을 위로하였다(편집인 주). 자료:문화방송 보도영상 갈무리.
[칼럼] 고통 앞에서 중립을 운운하는 자, 누구인가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찾았다. 그날 그는 단순히 ‘위로하러’ 온 게 아니었다. 진실을 외면하는 권력 앞에서, 고통 속에 놓인 이들을 위해 자신의 자리와 이름을 걸고 행동했다.
광화문에서 집전한 대규모 미사에서 교황은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았다. 집권 세력이 그 노란 리본을 ‘정치적’이라며 혐오하고 철거하던 시기였다. 교황은 굳이 리본을 달고 나와 세월호 유가족과 조용히 손을 맞잡았다.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종교의 본령이 무엇인지’ 보여준 순간이다.
프란치스코는 아시시의 성인 이름을 선택하며 교황청의 구태와 특권을 거부했다. 즉위 직후 교황궁 대신 교황청 사제들 기숙사에서 생활했고, 수백 년 이어진 교황 전용 리무진 대신 그의 중고차 피아트에 몸을 실었다.
12년간 월급도 받지 않겠다고 했고, 세상에 남긴 재산은 14만 원. 교황청 자산 수천억, 바티칸의 호화로운 금칠을 내려놓은 것이다.
그는 로마 빈민가를 직접 찾아가 발을 씻기고, 난민 수용소를 찾아 “이들을 거부하는 유럽은 죽어가고 있다”라고 일갈했다. 아동 성 추문으로 얼룩진 교황청 내부를 개혁하며 기득권 사제들을 대거 몰아냈고, 사제계 은폐 문건을 전부 공개했다. 그 개혁 과정에서 여러 차례 살해 위협과 내부 음모에 휘말렸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 교황이 대한민국에서 남긴 말.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 없다.”
이 문장은 지금 이 땅에 던져야 할 준엄한 질문이다.
세월호를 기억한다던 정치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고통받는 이들의 외침을 정치적 계산으로 재단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10년이 지나도 진상규명은커녕, 희생자를 모욕하는 자들이 여전히 정치하고, 언론을 움직이고, 검찰 권력을 쥐고 있다.
고통은 중립의 대상이 아니다. 고통 앞에 중립을 운운하는 자는 결국 가해자의 편이다. 교황은 말로 위로하지 않았다. 직접 행동했고, 권력과 충돌했고, 끝내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지금 이 나라의 종교, 정치, 언론, 지식인 집단은 그만한 각오를 하고 있는가.
십자가를 짊어지는 건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이제 누가 침묵하고, 누가 함께 서는지, 국민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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