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안국진(시사평론가)
조선후기나 지금이나 대다수 백성은 살기힘들어
정조 탕평책으로 개선하려 하나 부패 구제 불가
사헌부 장령 윤제홍, 세도가 김조순 치죄 못해
창원으로 유배가 유배지 생활 그림으로 남겨
그림 속 낙동강 자연과 인공물, 빈한한 삶 담아
예나 지금이나 세상살이는 언제나 힘들다. 나라 자체가 힘들 때면 가난한 사람은 더 심한 고초를 겪는다. 윤석열이 설치는 몇 년 사이 자영업자들은 줄 도산 했다. 지금도 비어가는 가게들은 셀 수조차 없다.
부산 남구 국회의원이란 자는 부산 사람들은 지원금이 필요 없다고 지껄이기도 했다. 지가 뭐라고? 저런 놈을 선출한 남구 사람들은 안 받아도 되겠는지 몰라도 다른 지역은 다 줘라.
조선이 후기로 접어들면서 정조의 탕평이 실패하고 붕당정치가 시작하였다. 안동 김씨가 세력을 잡았고, 이른바 세도정치가 극성을 이루며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다.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곡(還穀)이라는 삼정의 문란으로 하층민들에 대한 착취는 악랄해졌으며,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그림을 그린 윤제홍은 그런 시대를 살았다. 그는 저 그림을 그리기 전에 사헌부 장령을 맡고 있었다. 벽파였던 우의정 김조순의 치죄(治罪)를 미루다가 1806년 창원으로 유배를 갔다.
교류가 있던 사람이라 쉽게 벌하는 입장에 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1809년 사면되었으나 1820년까지는 복직하지 못해 힘든 생활을 했다. 그는 힘든 시절을 그림 그리고 글을 써서 생활한 것으로 보인다. 윤제홍에 따르면 원래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살았고, 당시에는 병도 들었다고 한다, 쌀을 구하지 못해 몹시 굶주렸다는 기록도 있어 극도의 궁핍한 생활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1812년경에 엮은 화첩에 저 그림이 있으니, 그가 창원으로 귀양을 갔을 때 낙동강 가에 앉아 있던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향인 양주에는 저리 큰물이 없다. 화제는 송(宋) 주희가 쓴 시를 몇 자 바꿨다.
하늘 끝에 긴 강 있고, 강 위에는 산 있네,
먼 산도 있기는 한데 보일락 말락.
안타까움만 더 하니 눈에 넣으려 하지 말고,
살짝 어선이 보이는데 잠시 갔다 올까?
아마 먼데 있는 산은 임금이 있는 곳을 말하는 것이고, 살짝 보이는 어선은 이런 곤란한 처지를 누구한테 이야기라도 하고 싶은 마음일 게다. 뒤에 서 있는 나무들도 이파리가 거의 없다. 게다가 모두 뿌리가 어느 정도씩 다 드러나 있다.
사람들이 사는 집도 물 건너편에 모여 있다. 자신의 빈한한 처지를 그대로 담은 것이다. 건너가야 할 잔교는 그래도 반듯하다. 아마 저때까지는 복직이 그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을 거다.
하지만 그림은 맑다. 화가 자신이 곧고 바르게 살았다는 증명일 것이다.
그는 「강안편주도」에 “내가 우연히 '사의'를 하였는데 이러한 경치가 반드시 있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썼다. 동양 미술에서는 지금 눈에 펼쳐진 것을 그대로 베끼는 일보다 눈에 보이는 현실 그 너머에 있는 뜻을 드러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 정신과 뜻[意]을 그리는[寫] 것이 바로 ‘사의(寫意)’였다.
문학에서는 이런 것을 “실제 같음(vraisemblance)”이라 한다. 프랑스 시인 부왈로는 『시론(L’Art poétique)』에서 “진실이란 때때로 사실과 닮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실제 같음을 표현하는 일이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것보다 더 까다로울 수 있다(p.222)”고 했다. 그래서 이런 그림을 단순하게 상상만 해서 그렸다고 하면 안 되는 이유다.
방식이야 조금 다르지만, 서양 그림에도 뜻을 그리는 경우가 있었다. Jean Siméon Chardin, Luis Egidio Meléndez 그리고 17세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지역에서 유행한 바니타스 사조의 정물화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거장들은 엎질러진 컵, 땅바닥에 떨어진 사과나 포도송이, 피가 흐르는 사냥감이 담긴 바구니로 그런 것 안에 끔찍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음을 암시할 수 있었다.
식료품, 촛대, 접시 사이에서 어떤 음모가 꾸며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사물들이 무자비한 전쟁 속으로 빨려 들어가려는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 동서양 그림의 뜻을 비교하면서 더 깊게 들어가기엔 능력이 모자란다.
제목을 만들어 붙이자면 「충신연주도(忠臣戀主圖, 신하가 임금을 그리워함)」가 되겠다. 싯구대로 「차간어강도(且看漁舡圖, 잠시 낚싯배를 보고...)」라 할까? 그냥 “님은 먼 곳에”라 할까? 그림은 국립박물관에 있다. 세로 24.3cm, 가로 35.3cm의 소품이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mo.an.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