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종근(역사저술가, 의사)

고려원종 시기 일본정벌을 위한 군사기지 설치

몽골 제국에 끝까지 항전한 삼별초의 영향권 안

고려말에는 왜구의 노략질로 피해 극심

임진왜란때는 합포해전으로 육지전 패배 설욕

▲  고ㆍ몽연합군 일본원정. ⓒ 창원역사민속관
▲ 고ㆍ몽연합군 일본원정. ⓒ 창원역사민속관

합포(마산)와 관련된 이야기들

삼별초(三別抄)의 항쟁과 합포

『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합포에 삼별초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원종 12년(1271) 2월이며, 다음해 11월에 삼별초가 다시 합포에 와서 함선 22척을 불태우고 몽고군사를 붙잡아갔다. 또 원종 14년(1273) 1월에 삼별초는 합포에 있는 함선 32척을 불태우고 몽고군사를 잡아 죽였다고 한다.

당시 합포는 남해 연안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삼별초의 대몽항쟁(對蒙抗爭)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며, 직접적인 삼별초의 영향권에 있었다고 보여진다

고ㆍ몽연합군의 일본 원정

고려 원종 15년(1274) 원나라 세조가 합포에 일본 정벌을 위한 군사기지를 설치하였으며, 충렬왕 6년(1280)에는 일본 정벌의 전담기구인 정동행성(征東行省: 征東行中書省)을 개설하였다.

합포에서 일본 정벌을 위한 출정은 모두 2차에 걸쳐 시도되었는데, 1차 원정은 충렬왕 즉위년(1274) 10월 30일. 2차 원정은 충렬왕 7년(1281) 5월 3일에 각각 이루어 졌다. 하지만 합포를 출발한 고몽연합군(高蒙聯合軍)은 갑자기 휘몰아친 태풍으로 막대한 인적ㆍ물적인 피해를 입고 철수하고 말았다.

왜구의 침입과 합포

고려말기 왜구들은 주로 경상도 남해안을 침범하였으며, 마산 지역의 피해는 상당하였다.

충정왕 2년(1350) 6월 왜구가 20여 척의 배를 타고 합포에 침입하여 병영(지금의 회원현성지)과 마을을 불태웠고, 공민왕 원년(1351) 9월에도 왜구가 50여 척 배를 거느리고 침입하였다. 공민왕 23년(1374) 4월에는 350여 척으로 합포를 침공하는 등 왜구의 침입은 점차 대규모로 발전하였다.

왜구의 침입은 우왕 때에 자주 일어났는데, 우왕 3년 (1359) 1월에 회원현의 조창에 있는 세곡(稅穀,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모두 빼앗아 가는 등 갈수록 왜구의 피해는 커져 갔다.

고려말에 왜구들이 합포 지역을 자주 침범하자, 우왕 4년(1360) 합포진 병영에 새로 부임한 부원수 배극렴(裵克廉)이 주민들과 힘을 합하여 합포성을 쌓아서, 왜구의 침략에 철저히 대비하였다.

고려시대 합포는 삼별초의 대몽항쟁지, 고려와 원의 일본정벌기지, 왜구침입의 방어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 역사의 현장으로는 회원현성지, 합포성지 등이 있다

임진왜란과 합포

조선 선조 25년(1592) 4월에 약 20만 명의 왜군이 부산을 침략함으로써 7년 전쟁인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당시 우리 고장의 선조들은 목숨을 걸고 왜적과 싸워 합포해전, 창원성전투, 안민고개 싸움, 안골포해전, 당항포해전 등 전쟁사에 길이 빛날 커다란 전공을 세웠다.

특히 합포해전은 임진왜란 이후 두번째 승전으로써 파죽지세로 밀리기만 하던 육지에서의 패배감을 반전, 승기를 잡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는 전투였다

출처:

1. 마산박물관

2. 『마산ㆍ창원 역사 읽기』, 마산ㆍ창원지역사연구회,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