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아십니까”, 대순진리회에 부정적 딱지 붙여
학교, 병원 소유와 수백만 신도로 최대 민족종교
박한경 도전 화천으로 내부 부패 비리, 사분오열
제2인자 박희규 의장, 종단 정상화와 개혁 추진
동학 정신 대거 수용, 개혁 박차 종단 앞날 맑음
▲ 대순진리회 제2인자인 박희규 의장이 대순115년(서기1985)에 대순화보에서 대순진리회의 사상과 나아갈 길을 밝히는 글. 자료: 대순진리회 회보 갈무리.
“도를 아십니까?”
이 말이 한때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의 중장년층은 아마도 이 말을 한 번쯤은 길거리에서 들어 봤을 것이다. 이 말에 호응하면 두세 명의 짝진 사람들이 부근에 있는 어느 집(포교소)로 데리고 들어가 조상 운운하며 재래식 절을 시키고 조상의 복을 받아야 운이 좋아진다며 돈을 내게 하였다.
한때 이러한 방법으로 빠르게 성장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종교가 대순진리회다.
대순진리회는 증산 강일순의 종교사상을 잇는 민족종교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정산 조철제가 강증산의 도를 이어받아 무극대도를 세웠고 해방 후에는 태극도로 개명하였다. 다시 태극도를 우당 박한경이 이어받고 이를 다시 대순진리회라고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강증산의 사상에서 새끼 쳐 나간 증산 계열 민족종교는 대순진리회 외에 십수 개나 있을 정도다. 대표적인 종파가 충남 대전에 거점을 두고 현재 바른 역사 복원에 힘쓰고 있는 안경전 종도사가 이끄는 증산도다.
대순진리회는 우당 박한경 도전이 서기 1996년 화천한 이후 분열되어 서울, 천안, 성주, 부전 등 각 방면 또는 여주, 중곡 등 도장별로 사실상 독립 단체로 난립하고 있는 상태다.
이 종단은 신도 수가 150만에서 200만 명으로 알려져 있다. 기관은 각 방면의 도장 외에 학교와 병원이 있다.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도 있는데 포천에 있는 대진대학교다. 병원은 분당과 동두천, 고성에 각각 제생병원이 있다. 이 정도 규모면 단일 종단으로서는 국내 최대규모의 민족 종교단체라고 할 수 있다.
대순진리회가 사분오열되어 방면별로 따로 살림을 차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박 도전이 화천 하기 전 박희규 의장으로 후계자가 정해졌음에도 건강악화와 당시 정권의 압박 등으로 박희규 의장이 박한경 도전을 계승한다고 선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왕성한 포교 활동으로 조직이 커지고 그에 따라 재산도 천문학적으로 불어나자 박 도전이 화천 하기 전 와병 때부터 분열 조짐이 나타났다.
분열 원인은 후계자 선포 불발과 더불어 감투와 돈이었다. 교육의 미비와 급 성장으로 발생한 도덕적 해이, 성문란 등 자격미달의 간부들 사이에서 권력과 부의 쟁탈전이 일어난 것이다. 권력과 부를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느냐를 가지고 음모와 술수 비리와 부패가 종단을 집어삼켰다.
특히 박도전의 와병이 깊어 짐에 따라 배신, 배도자들이 반기를 들자 지도력이 한계에 봉착하였고 정치권 까지 종단 운영에 개입하여 종단의 분열은 것잡을 수 없게 되었다.
박희규 의장의 개혁추진과 실패
대순진리회 운영은 중앙종의회가 맡아왔다. 감사원과 종무원 등 중요 기관도 있지만 최고기관은 중앙종의회다. 박 도전이 화천 하기 전까지 중앙종의회 의장을 박희규 선감이 맡아 왔다. 1년 임기 선출제라고 하지만 대순진리회 창건 초기부터 제2인자로 자리매김한 박희규 선감이 의장으로서 사실상 대순진리회를 이끌었다.
박 의장은 우당 박한경 도전이 서기 1969년 대순진리회를 창건하고 박 도전이 속해 있던 기존 태극도 세력에게 쫓겨 고난 겪을 때 산에 숨어 움막생활을 하는 박 도전을 20세 꽃다운 나이로 입도하여 보필하고 신도를 모아 대순진리회의 기초를 닦았다.
박희규 의장은 대순의 진리와 종단 발전에 일생을 투신하였기에 자리나 돈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종단을 좀먹고 파괴하는 부패 비리 세력을 발본색원하고 도를 바로 세우는 개혁에 착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부패 비리와 배도 세력이 종단 상층부를 모두 장악한 상태라 이들을 쳐 내면 종단을 모두 들어내야 하는 형국이라 쉽게 밀어붙일 수 없었다.
배도 세력은 이를 틈 타 박 의장을 박한경 처의 자리를 차지하여 본궁 행세한다는 핑계를 대어 종단에서 밀어냈다. 박 의장은 이를 두고 “개혁안에 반대할 때는 똘똘뭉치고 다시 감투 싸움에는 서로 물어 뜯었다.”라고 허탈해하였다.
대순진리회의 분열은 내부 뿐만아니라 외부세력의 간섭도 한몫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타 종교세력과 정치권 등이 개입하여 분열을 가속시켰다.
대순진리회는 이후 구심점을 잃고 각 도장을 차지한 인물들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체제로 돌아갔다. 쉽게 말해 나라는 사라지고 각 지방에서 군벌들이 할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겉으로는 대순진리회라는 간판을 달고 있으나 각 도장이 중앙의 통제를 받지 않고 독립하여 운영해 왔다. 그 세월이 30여 년이다.
박 의장은 최근 자신이 평생 몸담았고 자신의 분신과 같은 대순진리회의 사분오열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정상화하겠다는 결심을 내렸다.
이에 따라 서기 2025. 03. 31. 박희규 의장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대진민본(대순진리회정상화범민족혁신본부, 대표 박종구)은 대순진리회 정상화와 개혁을 바라는 각계각층의 대표와 시민들 및 정상화와 개혁에 뜻을 같이하는 대순진리회 각 방면 중요 책임자 및 회원들과 함께 대순진리회 정상화 대회를 열 계획이다. 이어 4월 11일에는 박희규 의장이 본궁에 취임하여 대순진리회 최고 책임자로 대순진리회를 하나로 통할 것으로 보인다.
▲ 대순진리회 박한경 도전이 살아 있을 때 박희규 선감이 중앙종의회 의장을 맡았음을 보여주는 대순회보. 자료: 대순회보 갈무리.
박희규 의장의 자주사상과 동학정신 표명
그렇다면 박희규 의장은 사상은 어떠한가.
그가 대순 115년(서기 1986) 7월 12일 대순회보에 기고한 글을 보면 가늠할 수 있다. 회보에서 뜨거운 한민족의 정기, 민족의 얼을 간직한 수운교(동학, 천도교), 증산교, 단군교(대종교)와 함께 대순진리회를 자주, 주체사상의 민족종교로 명명하고 일제의 탄압에 맞서 민족정기를 지켜온 종단으로 평가하였다.
이어 일제의 민족종교 탄압으로 민족종교가 유사종교, 사이비종교로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고 이의 영향으로 해방 후에는 외래 종교인 기독교 등이 민족종교를 미신으로 취급하는 사태에 이르렀다고 개탄하였다.
그러나 그는 대순진리회와 같은 민족종교는 결코 사이비종교나 미신이 될 수 없고 단군 더 나아가 한인(환인), 한웅(환웅)의 한민족 뿌리 조상의 정신과 주체적 사상을 이어받은 종교임을 분명히 하였다.
더구나 대순진리회의 요체가 성경신誠敬信이라고 함으로써 대순진리회가 민족종교의 부활로 일컬어지는 수운 최제우의 동학사상에 닿아 있음을 천명하였다. 성경신은 동학 창건자 최수운이 한알님과 하나 되는 첩경으로 밝힌 수행과 구도의 요체다. 용담유사에서는 이 중에서 성경 2자를 수없이 강조하였다.
“성경이자 지켜내어 한알님을 공경하면(용담유사/도수사)”
“개과천선 되었으니 성경이자 못지킬까(용담유사/도덕가)”
“성경이자 지켜내어 선왕고례 잃잖으니(용담유사/ 도덕사)”
신은 도를 구하는 출발점으로 보았다. 먼저 믿음이 있어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은 나와 삶을 대하는 태도다. 경의 대상은 한알님[天主]이다. 최수운에 따르면 한알님은 내 안에 모시고 있으니[侍天主] 결국 자신을 경하는 것이다.
이는 굳이 수도 생활을 하지 않더라도 자기 삶에 진실하라는 상식적인 말이기도 하다. 사람이 인생을 거짓으로 살았는가, 참되게 살았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자신에게 “성실하였느냐.” 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성은 삶의 지표가 될 것이다.
박희규 의장은 이것이 대순진리회를 꿰뚫은 요체라고 보았다. 그는 기고 글 끝부분에 이렇게 촉구하였다.
“우리 도인들은 사회정의 앞에 오뚜기처럼 의연하게 일어나 ...대순진리회가 한민족에 깊이 뿌리내려 세계로 힘껏 뻗어나가 대순사상으로 하나되어 인류화합과 세계평화의 성취를 위해 성경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대순진리회가 성경신을 수도의 요체로 하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 서기2006. 박희규 대순진리회 중앙종의회 의장이 환갑을 맞이하여 축하연에 참석한 모습. 자료: 대진민본 영상 갈무리.
대순진리회는 전신이 태극도이고 이름을 바꾸기 전에는 무극대도였다. 대순진리회의 뿌리인 정산 조철제가 처음 자신의 교를 무극대도라고 하였다.
무극대도 역시 동학에서 나온 것이다. 최수운은 용담유사 곳곳에서 무극대도를 언급하였다.
“꿈일런가 잠일런가 무극대도 받아내어(용담유사/교훈가)”
“만고없는 무극대도 여몽여각 득도로다(용담유사/용담가)”
“무극대도 닦아내어 오만년지 운수로다(용담유사/용담가)”
이외에 대순진리회의 또 다른 수행 목표인 “안심安心”과 “안신安身”도 분석해 보면 동학 최수운이 말한 “수심정기修心正氣”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안심은 수심으로 안신은 정기로 대응된다. 동학에서 기는 마음이라기보다는 몸에 가깝다.
“포덕천하”, “광제창생”, “보국안민”도 기치로 내세우는데 이것도 동학이 추구하는 사회구원 목표다. 다만 “해원상생”을 추가하고 있다. 이외에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무자기毋自欺도 대순진리회 도인들의 행동 지침인데 이것도 대순진리회만의 색깔이라고 할 수 있다.
박희규 의장이 대순진리회를 박종구 대표를 통해서 정상화 하고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이러한 동학정신과 함께한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이를 통해 대중 일반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어 온 대순진리회가 건전하고 투명하며 민족정기를 올곧게 잇는 민족종교로 거듭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