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우두머리 체포에 공수처30명, 경찰 120명 투입
1, 2차 저지선 통과하였으나 차벽과 인위장막에 철수
추가 경력, 장비 투입 제압 가능하였으나 쉽게 포기
오동운 공수처장 "예의갖춰 체포" 발언으로 이미 예견
▲ 박종준 경호처장은 반란수괴 윤석열 체포를 방해함으로서 반란에 가담하였다. 자료:제이티비시 보도 갈무리.
공수처와 경찰은 서기 2025.01.03. 이른 아침부터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농성하며 한 줌도 안되는 극우 세력에 함께 싸우자고 선동하는 반란 우두머리 윤석열 체포 작전에 들어갔다.
작전에 공수처 검사 수사관 30명 경찰 형사 기동대 120명이 투입됐다(이하 체포조).
당시 관저는 외곽을 서울 경찰청 55경비단이 맡고 있었고 관저 안은 수방사 202 경비단과 경호처 직원들이 담담하고 있었다.
체포조가 관저 입구에 도착하자 관저에서 나온 인물이 저지하는 듯했으나 김대환 공수처 부장검사와 잠시 무슨 얘기를 나뉘더니 순순히 길을 텄다.
곧이어 나타난 흰색 정문이 나왔고 체포조가 쉽게 열고 들어갔다.
1차 저지선을 통과한 것이다.
다시 수십 미터를 올라가니 흰색 작은 버스와 경호용으로 보이는 장갑차량 벽을 쳐서 길을 막고 있었다.
버스와 장갑차량 사이로 체포조가 들어가려고 하니 경호처 직원으로 보이는 자들이 황급하게 위에서 내려와 막았다.
이 과정에서 경호처 직원 한 명이 체포조에게 끌려 내려와 체포조 구역으로 밀쳐져 제압됐다.
한참 동안 차 벽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다가 이 상태로는 길을 뚫지 못한다고 판단한 체포조는 왼쪽으로 우회하여 신속하게 이동하였고 1백 미터 지점에 있는 철문 넘어 관저 2백 미터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이곳에는 약 2백여 명으로 추산되는 경호처와 수방사 그리고 행정 인력이 서로서로 팔짱을 끼고 인간장벽을 하고 있었다.
또한 앞서 막았던 흰색 버스 포함 버스들과 직원들의 승용차로 차 벽을 치고 있었다. 일부 직원은 총도 갖고 있었다.
체포조는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받은 반란 우두머리 윤석열을 체포, 수색하라는 영장을 제시하고 길을 틀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경호처장 박종준은 경호처 법을 들어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였다.
이후 체포조와 영장 집행을 저지하는 경호처 간의 밀고 당기는 몸싸움이 벌어졌다.
약 3시간 동안 지속되다가 경호처는 체포조를 이끄는 부장검사 포함 3명의 검사만 관저 건물 입구까지 가도록 허용하였다.
관저 앞에는 반란 우두머리 변호를 맡았다는 김호일, 석동현이 있었고 체포영장이 불법 무효라며 체포조의 체포 수색을 거부하였다.
빈손으로 돌아온 검사들은 결국 공수처장 오동운 연락하였고 체포영장 집행 중지를 선언하였다.
이때 경찰은 저지선 앞에 나와 있는 경호처장 박종준만이라도 특수공무집행방해 현행범으로 체포하자고 하였다.
그러면 경호장벽이 쉽게 무너질 것이고 윤석열을 결국 체포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수처는 체포 과정에서 불상사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거부하였다.
공수처장 오동운은 반란사태 국회 긴급현안 질문에 나와 반란 수괴 윤석열을 "대통령께서", "예우"라는 등 표현하여 정청래 법사위 위원장에게 질타받아 표현을 시정하기도 하였다.
오동운은 서기 2024.12.31.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직후인 서기 2025.01.01. 공수처 앞마당에서 체포영장 집행 기자회견을 하고 "질서 있게 대통령에 예우를 갖춰 체포영장을 집행하겠다."라고 하였다.
이제까지 반란 우두머리 윤석열은 체포영장도 불법 무효라며 사법 질서를 파괴하였고 경호처도 반란 수괴 윤석열을 경호하겠다고 하여 영장 집행을 저지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는 공수처의 윤석열 체포 실패가 예견된 것이다.
경찰 기동대 3천여 명과 수십 대의 경찰버스를 동원한 체포 작전이 대국민 압박에 못 이겨 보여주기식 가짜였다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
결국 인력과 장비 동원에 들어간 아까운 혈세만 탕진한 꼴이 됐다.
공수처장 오동운은 윤석열이 자기 입맛에 맞게 임명한 인물이라는 게 중론이다.
123 반란이 일어났을 때 반란범 수사권을 공수처로 넘기라고 적극적으로 나설 때부터 반란 수사를 뭉개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팽배하였다.
그동안 최수근 상병 수사 방해 등 수사를 장기간 지연시켜 윤석열에게 유리하게 끌어왔기 때문이다.
또 오늘 들어온 유튜브 방송의 소식에 따르면 체포 작전 당일 윤석열 체포 작전을 원래는 새벽 4~6시에 시작하기로 하였는데 갑자기 7시로 변경하였다고 한다.
또 특전사 707부대를 새벽까지 대기시켜 체포 작전에 투입하려고 하였는데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것도 공수처가 저지했는지 반드시 밝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