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우하량 유적, 천원지방 일본 전방 후원분 원형
여신 모신 신전, 고조선 고구려 네모난 적석총
서기전 3,500~3,000년, 중국 황제헌원 이전 것
▲ 중국 요녕서 우하량 유적지의 원형제단(편집인 주). 자료: 김상윤
김상윤의 중국 우리역사 기행 2
7월 29일, 오늘은 월요일이다.
건평현박물관과 동산취 제사유적은 월요일 휴관이어서 볼 수 없었다.
우하량 홍산유적은 현재 유지보수 중이어서 2번관만 참관이 가능한데, 월요일은 휴관이라고 한다.
그런데 조선족 가이드 오창화 선생이 여신묘(女神廟)와 제단 그리고 적석총이 함께 있는 2번관을 참관할 수 있도록 교섭하였다.
우하량 유적은 홍산유적 중에서도 단•묘•총(壇•廟•塚)이 한꺼번에 발견된 아주 귀중한 유적지다.
3단으로 구성된 원형 제단은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단이고, 여신묘는 이미 주신 개념이 성립되어 주신인 여신을 모신 신전으로서 모계 중심의 사회상을 드러내고 있으며, 네모난 적석총은 고조선과 고구려로 이어지는 우리 고유의 묘제로서 모두 중요한 문화 지표라 할 수 있다.
청나라는 하늘에 제사지내는 원구단을 북경에 세웠는데, 우하량 유적지의 3단 원형 제단을 재구성하니 북경의 원구단과 비슷한 모습이 나와 모두 놀랐다고 한다.
중국의 소병기는 우하량 유적지는 이미 '고국' 단계의 초기 국가 단계에 접어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고국'의 실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우하량 유적지는 서기전 3,500 ~ 서기전 3,000년까지의 유적지인데, 이때는 황제 이전의 시대로서 중국에서는 전혀 나라를 세웠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신용하는 우하량 유적지는 국가 단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출토된 유물에 무기가 한 점도 없는 점을 들어 그렇게 주장한다.
국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다른 부족들을 제압할 수 있는 무기가 필수적인데, 대체 무기가 한 점도 출토되지 않았다면 국가가 성립될 수 없다는 신용하의 주장에 수긍이 간다.
그러나 임재해나 이찬구는 우하량 유적지는 환웅이 신단수 아래 세운 신시국일 가능성이 많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단군신화'라고 알고 있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사실 환웅의 이야기가 주가 되어 있고, 단군의 이야기는 끝에 잠깐 나오고 있을 따름이다.
이에 착안하여 임재해는 우하량 유적지야말로 환웅의 신시국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신시국에 대해 700쪽에 가까운 책을 발간했다.
이찬구 역시 우하량 유적지는 환웅의 신시국일 수밖에 없으며, 특히 조이족(鳥夷族)이 환웅 세력의 실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어찌되었든 우하량 유적지는 홍산문화의 가장 중요한 유적지임이 분명하다.
중국학자들이 홍산문화를 비롯한 일대의 유적지를 '요하문명'이라 명명한 것도 우하량 유적지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다.
▲ 우하량 유적지의 여신전 평면도(편집인 주). 자료:김상윤
우하량 유적지 주자창에서 내리니 거대하게 만들어 놓은 여신상이 우리를 맞이 한다.
이 여신상은 제1지점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우하량 유적지 2번관 안에는 이곳에서 출토된 여러 유물과 더불어, 중국 고고학계의 거물들을 모두 조명해 놓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원형 제단과 네모난 적석총 등이 발견된 장소를 거대한 돔을 만들어 그대로 보호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원형 제단과 방형 적석총은 이때 벌써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이른바 '천원지방'의 관념이 뿌리내리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북방민족들은 하늘을 텡그리라 하는데, 이 텡그리의 어원도 사실은 하늘이 둥글다는 '똥그레'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아내는 특히 무덤 주변에서 출토된 '통형관'(筒形罐)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통형관은 위 아래가 뚫려 있는 토기관인데, 무덤 주위에 묻어 죽은 자가 하늘과 땅을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상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전방후원분 주변에도 통형관이라 할 수 있는 '하니와'가 묻혀 있고, 이를 일본학자들은 일본 고유의 묘제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의 전방후원분보다 수천 년이나 앞선 우하량 유적지에서 하니와의 전신인 통형관이 대량으로 출토되었으니, 하니와가 일본 고유의 묘제라는 말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우하량 유적지 하나 본 것만 해도 이번 여행이 아주 값지다고 생각했다.
우리 일행은 우하량 유적지 참관을 마치고 내몽고 적봉시로 옮겨 짐을 풀었다.
저녁식사는 우리 광주팀이 대접했는데, 모든 사람이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는 유쾌한 시간을 가졌다.
▲ 우하량 유적 제단에 있는 통형관. 일본 전방후원분의 하니와의 원형이다(편집인 주). 자료: 김상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