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전집현(자유기고가)
환관의 성기나 음낭을 제거한 이유는 궁녀와 관계를 막기 위함
성기 절단시 충격과 염증, 과다출혈로 8할에서 9할은 죽어 버려
궁궐에서 환관으로 풍족하게 살려고 자신의 음낭을 자른 손약정
마지막 황제 푸이가 만주국 황제가 되자 그의 밑에서 환관생활
전후 중국 공산당체제에서 질시를 당했어도 97세까지 장수해
▲ 청나라 마지막 환관, 손약정. 가난하게 태어난 손약정은 환관이 되면 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 여겨 스스로 음낭을 제거하였다(편집인 주).
<중국의 마지막 환관: 청나라 순야오팅>
환관들은 24시간 궁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왕이나 황제의 여자인 궁녀와 연애질을 막기 위해 성기를 잘랐다고 한다.
한국은 음낭만 실로 묶은 뒤 잘라 냈지만, 중국은 음경과 음낭을 모두 잘랐기에 더 위험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항생제가 없었기에 성기를 자르면 '쇼크, 염증과 과다출혈'로 인해 80~90%가 죽었다.
대신 환관은 황제를 측근에서 모셨기 때문에 비교적 유복하게 살았다.
1. 환관이 되려고 음경과 고환을 잘랐는데 황제정이 붕괴
순 야오팅((孙耀庭)은 지독한 가난 때문에 13살 때 환관이 되겠다고 음경과 고환을 뿌리까지 낫으로 제거하였다.
그는 쇼크와 과 출혈로 보름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일어났다.
근데 신해혁명(1912년)으로 공화국이 들어서 환관을 뽑아 줄 곳이 사라졌다.
2. 선통제 푸이의 환관이 되다
순 야오팅은 너무 놀라서 '자신의 절단된 것'을 기름종이에 고이 싸서, 무작정 베이징의 자금성에 갔다.
청나라는 통치권을 잃고 망했지만
선통제 푸이는 자금성 내에서는 황제 행세를 할 수 있었기에, 그도 일단 환관 노릇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배는 곪지는 않았지만, 예전과 같은 권세나 부귀영화는 언감생심이었다.
근데 1924년 베이징에 정변이 일어나면서 청나라 황실에 대한 예우가 폐지되었다.
그러자 선통제 푸이와 환관들이 자금성에서 쫓겨났고, 순 야오팅도 이제 갈 곳을 잃어버렸다.
그 뒤 10년 동안 고자라며 갖은 모욕을 받았다.
쓰레기를 주워서 돈을 벌기도 하고 경극단에 들어가 삐에로를 하면서 겨우 끼니를 때웠다.
그러다가 1933년 푸이가 ‘만주국의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만주국의 궁궐로 무작정 갔다.
그렇게 1945년까지 10년 이상 환관을 더 했다.
3.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조리돌림. 그래도 97살까지 장수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괴뢰국 만주국’도 사라지면서 중국에 환관이란 야만적인 제도가 사라졌다. 그리고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그는 다시 ‘놀림감’으로 전락했다.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봉건 잔재라고 홍위병에게 잡혀 머리카락이 잘리고 조리 돌림까지 당했다.
그러나 그는 질긴 인생을 이어갔다. 그리고 무려 97세까지 장수했다. 그는 죽기 전 17년 이상을 북경의 한 사찰에서 은둔했다고 한다.순 야오팅은 신체가 불완전하다고 평생 목욕하기를 꺼렸다. 그가 죽자 그의 유언대로 시신을 씻기지 않고 바로 화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