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철기문화 일본 구주를 거쳐 야마토 열도로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일본은 정상 국가가 아냐

본토 삼국의 식민지 열도, 백제 이주 뒤 독립국

▲일본 시코쿠에 있는 한땅 무덤양식의 하나인 횡혈식 석실 고분(편집인 주). 출처: 시코쿠 세토우치 가가와현 다카마쓰시 공식 관광 사이트

통치체제를 갖춘 일본 최초 왕은 누구일까?

“제국(弟國)으로 도읍을 옮김 (계체 12년) 518년 3월 9일 十二年 春三月丙辰朔甲子, 遷都弟國, 번역주 제국(弟國;오토쿠니) 山城國 乙訓郡을 가리키며, 현재 京都府 長岡京市 今里 부근으로 추정된다.

繼體가 이처럼 야마토 지역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 지역으로 遷宮을 계속한 이유에 대하여 그가 應神天皇의 5세손이 아니라 越前 등 奈良盆地 외부의 호족세력이었기 때문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동북아역사넷> 인용)”

이글을 읽으면서 '應神天皇은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에가미 나미오 전 도쿄대 교수는 "일본 선조는 스진천황(應神天皇)이고 일본 왕조 국가의 역사는 가야에서 북큐슈를 거쳐 야마토 조정에 이른 것이 바로 최초의 일본왕조이다"고 하였다.

미즈노 유우(水野祐)의 <3왕조 교체설>(三王朝交替説)은 계체 천황 이전에 두 차례의 왕조 교체가 있었으며 26대 계체 천황이 현 일본 황실 최초의 혈통적 직계 조상이다.

한일문화연구소장인 김문길 부산외대 명예교수는 가야문화진흥원 학술대회(2024.04.27)에서 “숭신천황(崇神天皇)은 가야씨족이다”라는 주제의 기조발제에서 “가락왕국의 씨족인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어느 왕족이 일본에 들어가 강한 통치력을 발휘하였다.” 라며, “그 천황이 바로 숭신천황(崇神天皇)이고 본명은 미마키 이리히코(ミマキイリヒコ)다”라고 밝혔다.

일본의 통일국가 이전은 부족의 힘센 통치자가 존재할 정도이지 제대로 된 국가의 역할은 하기 어려웠고, 통치 체계를 갖춘 왕은 아직 없었다.

“10대 천황 스신천황(崇神天皇) 이전은 신화적인 존재들로 후세에 창작된 것이라 여겨진다. 통치 체제를 갖춘 것은 스신천황(崇神天皇) 때 부터이며 그가 가야 김씨 곧 김해김씨의 후예다”라고 강조했다.

일본과 가락국은 거리상 가장 인접한 곳으로 강한 세력을 가진 철기문화의 발상지인 가야의 문화가 일본 큐슈 지방을 거쳐 야마토에 전파되어 일본이 고대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는 관점이다.

이원희 변호사는 <속국 왜국에서 독립국 일본으로> 책에 "백제 멸망 이전까지의 왜국은 정상적인 고대국가가 아니었다. 기본적 법률인 율령이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여 준다. 백제가 멸망하자, 그제야 왜왕 천지를 필두로 지배층에서 율령과 관위, 관제, 호적, 교육기관 등 고대국가 형성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작업을 맹렬한 속도로 진행하였다. 국호도 왜국(倭國)을 일본(日本)으로 바꾸었다.

백제나 고구려, 신라에서는 수백 년 전에 완비되었던 이러한 기초작업이, 왜국에서는 백제 멸망 이후에 비로소 이루어졌던 것이다. 속국 혹은 식민지 왜국이, 백제 멸망 이후 비로소 독립국 일본으로 새 출발 하였던 것이다."라고 한다.

서기 400년대 북큐슈 지역에는 일본열도에서 제일 선참으로 선진적 묘제와 새로운 농구, 공구, 무기무장, 마구류, 도질토기 등이 출현하였다.

북큐슈 수끼사끼고분과 로오지 고분은 철제단갑 등 가야계 특유의 유물이 드러난 가야계통 무덤으로 고분들에서 나온 가야식 갑옷과 칼, 쇠낫, 주조식 도끼 등은 4세기에는 일본에서는 찾아볼수 없었던 유물들이다.

이것은 그 무덤에 묻힌 사람들이 가야에서 온 우두머리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더욱 주목할 것은 가야의 지명을 지닌 북큐슈 일대에 있는 일본 최초의 횡혈식무덤들에 정치적 권력자들이 묻혔다는 사실이다.

(<북한학계의 가야사 연구> 참조) 일본의 도쿄국립박물관 '야마토왕권의 성립-보물의 생산’에서는 야마토왜가 탄생하는 고분시대 전기인 4세기를 중심으로 유물을 살펴보고 있다.

<송서(宋書)> ‘왜국전’에 태조 원가 2년(425년)에 왜왕 찬(贊)이 조공해 작위를 주었다는 기사가 있다. 이 왜왕 찬(贊)이 통치체제를 갖춘 일본 최초의 왕으로서 가야계 후손으로 큐슈에 있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