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지정스님(문경 봉천사 주지)


상주, 함창을 아우르는 대규모 저수지 공갈못

공갈못에서 나온 나무판 탄소연대 1천년 넘어

김제 벽골제를 비롯 4대 저수지 중의 하나

둘레 10키로미터 육박, 고개 고녕가야 생명수

▲상주 함창 공갈못 옛터에 세워진 기념비. 자료: 지정스님

1. 일제 식민사학자, 고녕가야 지워

신라 진흥왕 시대 상주 함창지역을 일러 상락(上洛)이라 불렀다. 하락(下洛)에 대치되는 이름으로 남쪽 김해지역을 일러 하락이라 부르고 낙동강 중상류 지역의 함창고녕가야를 일러 상락이라 하였던 것이다. 우륵의 가야금 12곡 가운데 상가라도와 하가라도가 있어 김해를 하가라도라하고 함창을 일러 상가라도라 했다.

그러나 일제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함창을 놔두고 한참 아랫녁인 고령 대가야를 두고 상가라도 즉 상락이라 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령대가야 위쪽에 엄연히 존재한 성산가야나 함창고녕가야는 임나일본부에 몰두한 식민사학자들의 안중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위쪽의 성산가야와 더 위쪽에 있는 고녕가야를 누락시켰으며 옛적에 상주를 일러 상락이라 칭한것마저 외면했다.

2. 고대 저수지 공갈못, 관상용 생태용으로 축소
상락의 고대 저수지인 공갈못은 이 지역 평야의 관개수로를 담당했던 주요 산업기반이었다. 문경시 점촌터미널에서 자동차로 10분쯤 상주로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공검면 소재지가 나온다. 4차선이 시원스럽게 뚫려서 상주나 대구로 가기에는 편리해졌지만 인구가 줄어든 면 단위의 상권이나 활력은 예전보다 월등히 떨어졌다. 승용차로 어렵사리 공검면 소재지에 도착하면 터미널옆에 연꽃이 그득한 공갈못이 나온다. 저수지 앞에는 안내비석이 높게 서 있으며 주위로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다.

비석 글을 읽어보면 현재 공갈못 규모는 많이 축소되었으며 본래 목적보다는 관상용과 생태공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공검지(공갈못)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수리시설로 원래목적은 농업용수시설이었으나 지금은 그 역할이 퇴색하여 역사유물로써 경관을 더 중요시 하고 있다. 기존의 농업용수 역할은 새마을 사업을 하면서 상부에 새로 지은 오태저수지가 대신하고 있다. 예전에는 못 둘레가 1만7000보 둑길이가 800보나 되었으며 일제강점기와 새마을 운동을 거치면서 식량증산 차원에서 저수지의 대부분을 메우고 농경지로 전환했다.

3. 김제 벽골제 등 한국 4대 저주시
삼한시대 저수지로서 김제의 벽골제 이상으로 컸으며 영남 제일 저수지로 기록되어 있다. 김제 벽골제, 제천 의림지, 밀양 수산제와 더불어 고대 한반도 4대 저수지로 알려져 있다. 10여년 전 저수지 정비공사를 하면서 목재 수문을 발견해서 탄소연대 측정을 해보니 1,000년 이상이 된 고대 유물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아득한 고대 시기 함창에 이렇게 유명하고 거대한 저수지가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던가? 여러 가지 사료나 유물유적과 연관 지어 볼 때 그 근거는 고녕가야를 놔두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대국가가 성립하려면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식량생산이 필주조건이다.

식량생산 특히 벼농사에 있어서 수리관개 시설은 가장 중요한 조건일 수밖에 없다. 함창평야를 비롯하여 상주 점촌 산양 용궁 마성 등은 강과 함께 넓은 평야가 이어져 있다. 고대 수리시설이 부족한 시절에 강을막아 저수지를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냇물이나 계곡을 가로막아 물을 저장하는 정도가 최선이었던 고대에 거대한 저수지를 축성하는 것은 국책사업일 수밖에 없다.

지금은 많이 축소되어 1만여 평에 지나지 않지만 옛 문헌에 따르면 공갈못은 국내에서 제일 거대한 저수지였다. 방죽 길이가 현대단위로 800m에 이르고 둘레는 10km에 달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볶은콩 한 되를 한알씩 먹으면서 다 먹을 때까지 걸어도 둘레를 다 걸을 수 없다고 했다.

4. 둘레 10킬로미터, 단재 신채호 공갈못 풀이
실제로 공검면에 사람이 살게 된 시기는 일제 강점기 이후 공갈못 물을 모두 빼내고 나서 동네가 생겼다고 한다. 그것을 감안하면 둘레가 10km라는 것도 적게 잡은 수치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공갈못이 고녕가야라는 말에서 발생했음을 이두로 설명하며 추호도 함창고녕가야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다.

‘고녕’이 변하여 ‘공’이 되고 ‘가야’가 변하여 ‘갈’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선생의 설명을 빌리자면 가야라는 말 자체가 큰 저수지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가야의 본래 의미대로 저수지를 보유하고 있는 지역은 함창고녕가야가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위치적으로 공검지는 저수지로 유입되는 주위의 강이나 하천이 없는데도 대형저수지가 생성되었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공검지 저수지를 둘러싼 주위 환경은 분지로서 빗물이 모여 저수지 안쪽으로 모여드는 형국이다.

깊은 골짜기나 높은 산들이 없지만 분지 형태로 면(面)전체를 둘러싼 지형조건이 물을 낮은 곳으로 모여들게 했으며 한쪽의 좁은 길목을 막아서 둑을 쌓았다. 공검면 소재지가 위치하고 있는 현재 길목 800여 미터만 가로막으면 공검면 전체 물을 가둘 수 있는 형국이다. 공갈못 주위에는 높은 산이 별로 없고 나즈막한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멀리로는 제악산, 오정산등이 보이지만 거기서 흐르는 물들은 영강이나 이안천으로 흘러들고 가까이 숭덕산 국사봉 오봉산 등 올망졸망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거기에 더하여 공갈못 지층은 거대한 습지로 지하에서 항상 물이 솟아나는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넓은 분지의 낮은 산에서 모여든 빗물과 땅에서 솟아나는 용천수가 거대한 공갈못의 수원인 셈이다. 분지를 둘러싼 야산자락 한쪽의 틔어진 부분에 둑을 쌓고 물을 저장한 것이니 그 둑의 길이가 현대척도로 800m나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둑을 허물고 철길과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5. 저수지 만들며 인신공양 이야기 전해
공갈못은 오랜 세월만큼이나 저수지에 관한 전설과 사연이 많다. 인신공양 전설, 승주(僧柱)설화, 황룡전설, 우경설화, 공갈못 노래 등이 대표적으로 전해오고 있다. 인신공양이란 고대 공적기관에서 대형공사를 할 때 사람을 제사 재물로 바치는 관습이다. 저수지를 처음 만들 때 보가 여러 번 터지는 바람에 공갈이라는 아이를 묻고 저수지를 쌓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중환의 <택리지>나 홍귀달 선생의 문집에도 그것이 기록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 둑이 터지는 바람에 이번에는 주위 절에 살던 스님이 둑 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본인을 묻고 공사를 재개하라는 것이었다. 인부들이 만류해도 듣지 않고 마치 기둥처럼 반듯이 앉아서 둑에 묻혔다고 한다. 그만큼 공갈못을 축조하는데는 노력 이상의 희생이 제공되었음을 알려주는 이야기다. 한편으로 공갈못 축조공사가 당시에는 그토록 난공사였음을 역설적으로 알려주는 내용이다.

국내에 전해오는 인신공양 사례로는 성덕대왕신종을 조성할 때 아이를 쇳물에 넣었다는 것과 인당수에 던져진 효녀 심청이 전해온다. 세 가지 설화 모두 불교와 연관된 내용들로서 불살생을 근간으로 하는 불교에서 어떻게 인신 공양과 같은 원시관습이 행해졌는지 의심된다. 이 고장에서는 공검지라는 공식명칭보다는 공갈못이라는 재래의 이름을 즐겨 사용한다. 무미건조한 낯선 단어보다 우리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공갈이라는 어휘에 더 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 공갈못은 상주함창 즉 웅주거목의 넓은 들판을 적셔주는 생명수를 공급하는 생명창고였던 것이다.

6. 소리꾼들 공갈못에 얽힌 남녀사랑 노래
어린시절 소리꾼으로부터 들었던 공갈못 노래소리는 나이가 들었어도 잊혀지지않는다. 공갈못 노래는 상주뿐 아니라 이 땅을 살다간 모든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가사로 우리들 뇌리에 전해온다.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따는 저처자야 연밥줄밥 내따줄게 이내 품에 잠자주소 잠자기는 어렵잖소 연밥따기 늦어가오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따는 저 큰 아가 연밥줄밥 내따줌세 백년언약 맺어다오 백년언약 어렵잖소 연밥따기 늦어진다.”

공갈못과 함께 비단의 본산지인 상주함창은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경북대학교 상주캠퍼스의 전신은 상주 농잠학교에서부터 시작하였다. 가야금 12현의 재료 역시 비단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함창고녕가야말로 가야금의 본고장이 아닐까하는 추론을 해본다.

가야금의 본국인 5가야 중에 유일하게 가야금줄의 원료인 비단을 생산하는 본거지로서 함창은 가야금의 산실일 수있다. 함창에는 명주박물관과 한복진흥원이 있으며 연례행사로 가야금연주회도 열린다. 함창은 고녕가야의 오래된 역사와 문물을 면면히 전승하고 있다. 공갈못에는 연꽃 뿐아니라 다양한 조류가 날아들어 생태공원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겨울에는 고로왕릉으로부터 불어오는 황량한 골바람이 고녕가야의 옛 영화가 무상함을 전한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