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효백(경희대 교수)

농경민족, 땅에 뿌리 내린 생명의 문명

기마민족, 초원을 달린 강철의 민족

해양민족, 바다 항해하며 교역과 정복

농경, 기마, 해양을 모두 정복한 한겨레

땅의 지속력, 초원의 속도, 바다의 개척력

세 문명을 융합한 세계 유일의 한민족

▲“한민족은 땅을 일구고, 초원을 달리며, 바다를 지배한 유일한 민족이다.” 자료: 삼태극


제1부 전통 제1장 민족의 뿌리와 기록 제5절

5.《한민족 세계유일특징 ― 농경&기마&해양민족》

“한민족은 땅을 일구고, 초원을 달리며, 바다를 지배한 유일한 민족이다.”

1) 세 얼굴의 문명 ― 농경·기마·해양의 삼중 정체성

세계 문명은 대체로 셋으로 나뉜다.

하나, 곡식을 뿌려 문명을 지은 농경민족.

둘, 말을 달려 제국을 세운 기마민족.

셋, 바다를 항해하며 교역과 정복을 병행한 해양민족.

그런데 놀랍게도, 이 셋을 동시에 완비한 민족은 지구상에 단 하나—바로 한민족이다. 그들은 논밭을 일구면서 활을 들고, 말을 타면서 배를 띄웠다. 정착과 이동, 평화와 전투, 육지와 바다의 세계를 삼위일체적으로 통합한 문명형 민족, 그것이 한민족이다.

2) 농경민족 ― 땅에 뿌리내린 생명의 문명

한반도와 만주는 기원전부터 벼농사가 가능했던 동북아의 비옥지대이다. 반구대와 울주 일대의 신석기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와 벼알은 세계 최고(最古) 수준의 벼농사 흔적으로 꼽힌다.

한민족은 씨앗을 신성한 생명의 근원으로 여겼고, 땅을 곧 어머니라 불렀다. 봄이면 두레로 밭을 갈고, 가을이면 마을 단위로 수확제를 열었다.

농경의 질서 위에 공동체의 규범이 생겨났고, 국가의 법이 만들어졌다. 경작·저장·분배의 세 단어가 한민족 문명의 기초 언어이다.

이 정착적 농경문화는 한민족의 근면성, 협동심, 세밀함, 장기계획 능력을 형성했다다.

그것이 훗날 산업화·공업화·정보화의 정신적 기틀이 된다.

3) 기마민족 ― 초원을 달린 강철의 민족

그러나 한민족은 결코 흙에만 묶여 있지 않았다.

그들의 피 속엔 초원의 바람이 흐르고, 활과 말이 그들의 심장을 대신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병사들은 모두 말 위의 전사(戰士)였다.

《구당서》는 고구려를 “활 잘 쏘고, 말을 타는 것을 숭상하는 나라”라 했다. 백제 또한 “장신이고, 기사(騎射‘ 말탄 채 활을 쏘는 일)를 예로 여긴다”고 기록되어 있다. 말과 활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민족의 생리이다.

고구려 벽화의 기사(騎士)들은 단지 싸우는 군인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잇는 존재로 묘사된다.

달리며 쏘고, 쏘며 달리던 그들의 기마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답노(踏弩)’라 불린 기술은 말 위에서 몸을 비틀어 뒤의 적을 쏘는 전법으로 몽골·투르크보다 수 세기 앞섰다.

정주민의 농경력과 유목민의 기마력이 한 몸 안에서 합쳐진 혼혈의 에너지—그것이 한민족이 강한 이유이다.

4). 해양민족 ― 바다를 건너 나라를 세운 사람들

그런데 이 민족의 세 번째 얼굴은 더욱 놀랍다.

그들은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수서》《구당서》《신당서》《신오대사》 백제전은 이렇게 기록한다.

“처음에 백가(百家)가 바다를 건너 나라를 세웠으므로 백제라 하였다(初以百家濟海 因號百濟).”

즉, 백제의 건국은 해양의 정복에서 비롯되었다.

‘濟海’—바다를 제패하고 건넜다는 뜻이다.

백제는 한강 유역의 비옥한 농경지와, 서해의 항로를 동시에 장악한 해상왕국이다. 백제의 배는 일본 열도까지 닿았고, 그곳에 철기·조선·불교문명을 전파했다. 백제 기술자들은 일본 조정의 조선소를 지휘했고, 그들의 선박은 철판을 덧댄 철갑선(鐵甲船) 형태였다고 《일본서기》는 전한다. 서양이 철갑함을 만든 것은 1200년 뒤의 일이다.

5) 발해 ― ‘바다를 국호로 삼은 제국’

한민족의 해양정신은 백제에서 멈추지 않았다. 고구려의 유민 대조영은 새로운 나라를 세우며 그 이름을 발해(渤海)라 했다.

국호 자체가 ‘용솟음 치는 바다이다다. 이것은 단순한 지리 명칭이 아니라, “우리는 바다의 백성이며, 해양을 지배하는 제국이다”라는 선언이었다. 발해는 동해와 연해주, 사할린, 일본, 당나라 연안을 잇는 북태평양 해상 네트워크를 운영했다.

《일본서기》는 발해 사신이 일본을 34회나 방문했다고 기록한다.

그 항로의 길이는 2000km, 그 시대 항해술로는 거의 기적이다.

발해는 내륙 수도 상경에서 해안 도시 동경으로 이어지는 복합 내륙·해양 복합국가이다. 농경으로 먹고, 기마로 지키며, 해양으로 교역한—세 문명의 완벽한 결합체이다.

6) 고려 ― 벽란도, 세계를 잇는 해상실크로드

고려는 이 전통을 제도화했다. 개성 외항인 벽란도(碧瀾渡)는 11~13세기 천주와 알렉산드리아를 앞서는 세계 3대 무역항 중 으뜸이었다.

《송사》는 이렇게 전한다.

“고려의 항구에는 각국의 상선이 몰려와 금과 은, 비단과 향료, 보석을 교역했다.” 아라비아·페르시아·송나라·일본 상인들이 한꺼번에 모여드는 국제무역항—그것이 벽란도이다.

고려의 조선기술은 이미 송나라보다 앞섰고, 해군은 여진·왜구·거란의 함대를 연전연승으로 제압했다. 몽골 원정 때에도 고려 수군은 세계 최대 함대를 건조했다. 이 모든 것은 농업세력을 기반으로 한 자원력, 기마병이 확보한 내륙 방어선,그리고 해양 수군이 주도한 교역망의 삼각 조화이다.

7) 조선 ― 거북선의 시대, 세계 해전 승률 제1의 민족

이 전통은 조선으로 이어진다. 세종대에는 판옥선이 완성되어 해상 운송과 군사에 혁신을 가져왔고, 임진왜란의 절체절명 순간, 이순신은 그 정점에서 거북선(龜船)을 탄생시켰다. 거북선은 세계 최초의 실전형 철갑함, 그리고 다연발 화포 전함이다. 7년 전쟁 동안 23전 23승—세계 해전사에 이런 승률은 전무하다. 영국의 넬슨 제독조차 27전 20승이 한계였다. 5000년 해양 전쟁사에서 “패전 없는 수군”은 오직 한민족뿐이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농경의 생산력·기마의 기동력·해양의 창의력이 결합한 문명적 결과이다.

8. 세 문명의 융합 ― 땅의 지속력, 초원의 속도, 바다의 개척력

농경민족은 풍요롭지만 보수적이고, 기마민족은 강하지만 일시적이며,

해양민족은 개척적이지만 불안정하다. 그러나 한민족은 이 셋을 절묘히 조화시켰다. 농경의 땀으로 지속성을, 기마의 속도로 추진력을, 해양의 모험심으로 창조성을 길렀다.

그래서 한민족은 지속하면서도 돌파하는 민족, 뿌리내리면서도 날아오르는 민족이 되었다. 정주와 이동, 생산과 전쟁, 토지와 항로를 동시에 지배한 문명형 민족—이것이 한민족의 세계사적 유일성이다.

오늘의 의미 ― 농경의 근면 + 기마의 역동 + 해양의 국제성

이 삼중 유전자는 오늘날까지 한국인의 심장 속에 살아 있다.

농경민족의 근면함과 세밀함은 제조업·과학·정밀공학으로 이어지고,

기마민족의 속도와 돌파력은 개척기업과 기술혁신,

해양민족의 개방성과 네트워크 감각은 K-팝·무역·외교력으로 되살아났다.

한국인은 이제 바다를 넘어 우주로 나아가고 있다—

그 우주선의 금속에는 철갑선의 영혼이, 그 내부의 시스템에는 두레의 질서가, 그 추진력에는 기마민족의 심장이 뛰고 있다.

학술 한마디 ― 세계 유일의 ‘삼중문명 복합체’

메소포타미아·이집트·인더스 문명은 농경 중심이다.

몽골·흉노·투르크·스키타이는 기마문명이다.

페니키아·그리스·폴리네시아는 해양문명이다.

그러나 세 문명을 동시에 장기적으로 내재화한 사례는 한민족뿐이다.

고조선의 농경·고구려의 기마·백제·발해·고려·조선의 해양 전통이

단절 없이 이어진 유일한 문명사적 계보—그것이 바로 한겨레 문명이다.

맺음말 ― 대륙과 해양을 잇는 문명, 그 이름 코리아다.

한민족은 농경의 대지에서 삶을 일구고, 기마의 초원에서 제국을 달리며, 해양의 파도 위에서 세계를 향해 나아갔다. 그 세 에너지의 교차점에서 한겨레라는 문명이 탄생했다. 세계 문명의 분류법 어디에도 없는 “삼위일체 문명형 민족”, 그것이 바로 한민족이다.

“한민족은 땀으로 땅을 길들이고, 바람으로 초원을 달리며,

파도로 세계를 건넌 민족이다.” 유목 해양 일군 민족은 한민족이 유일하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ganghyobaeg/about_work_and_educ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