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에드워드 리(시사평론가)

 

우민화 획책하는 종교… 사회혼돈 불러

자아 없는 자는 하나님을 알 수 없어

비판적 사고 없으면 타인에게 이용당해

▲ 광장에서 연설하는 전광훈(편집인 주). 자료: 에드워드리
▲ 광장에서 연설하는 전광훈(편집인 주). 자료: 에드워드리

우리 사회가 이상한 종교와 무속의 난립으로 사회병리현상을 앓고 있다. 급기야 적그리스도 전광훈의 폭도들이 법원을 습격하는 폭동까지 일어났다. 망나니-마녀 커플의 출현과 함께 건진법사, 천공, 신천지 등 요괴 및 거짓 메시아들로 혼돈의 연속이다.

유유상종이라고 한덕수 역시 무속에 빠진 자이며, 그의 처가 무속인으로 알려진다. 이런 무속과 전광훈-신천지류의 집단으로 인해 다수의 고위공직자를 포함한 절대 우중이 국민의 30%에 달한다.

특히 전광훈은 극우주범을 자처하며 사회교란에 앞장선, 망나니보다 더 위험한 자다. 윤상현이 90도로 허리를 굽히고, ‘김문수를 대통령 시키라’고 교지를 내리는 데서 국힘은 전광훈의 손아귀에 있다.

21세기 문명국가에서 무엇이 이토록 광적인 우중들을 양산하게 되었을까? 생각이 깊어진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비상계엄 시 각료들에게서 목도했듯이 ‘절대 무지성’이라는 사실이다. 자아가 없는 자들의 기복신앙이 우중의 원인이 아닌가 사료된다.

종교가 대중을 우민화하는 것은 큰 죄악이다. 인문적 수양과 자아가 부족한 사람들일수록 쉽게 휘둘린다. 다수의 종교 지도자들이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데서 또다른 전광훈이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돈을 숭배하는 장사치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의지다. 그런데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개인의 자유의지를 뺏고 하나님을 팔아 두려움으로 복종케 한다. 이는 하나님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처사다.

하나님은 인간의 일에 간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간여하면 인간의 삶이 아니라 그의 삶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왜곡해 기복신앙의 우중을 만든다. 미안하게도 자아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이는 인간이 발전해 신의 영역에 이르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과학의 궁극적인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탐구할 수 있는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일 게다. 인류에게 이익을 주는 산업상의 추구, 인간을 기쁘게 하고 순화시켜주는 예술, 인간의 지성을 넓히고 높이는 학문, 이러한 것들은 영원하고 무한한 근원에서 이 지상으로 나온 방대한 진리의 작은 단편에 불과하다.

신학은 관찰하여 밝혀진 진리를 질서 정연하게 제시하고, 그것이 인생사에 적용되는 방법을 말해 준다.

그러나 신학적인 지식에 정통한 사람도 종교적인 면에서나 심지어는 도덕적인 품성에서조차 크게 결여됨을 본다. 신학이 이론이라면 종교는 실천이다. 신학이 교훈이라면 종교는 모범이다.

학문으로써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체계적이며 종합적인 지식을 주로 지성으로 다루는 것이나, 종교는 그러한 지식 또는 참된 믿음을 개인의 생활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종교의 정신을 찾아볼 수가 없다. 종교가 존재가치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필자 역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지만 종교인들의 왜곡과 무지성에 매우 지쳐 있다.

특히 일부 목회자들의 수구적 사고는 실로 위험하다. 그들은 자신의 ‘위엄’을 위해서 쉽게 하나님을 판다. 이는 폭력이자 하나님을 부인하는 일로, 수구언론과 더불어 지나치게 부패했음을 보여준다.

12.3 계엄직후 쓴 글의 일부를 다시 소환한다. “자신에게, 그리고 권위 있는 다른 이들의 생각에 의문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게 될 거야. (If we don't question what we think, and what others in authority think, we're fooling ourselves.)”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Carl Sagan)이 딸에게 유언으로 당부한 말이다.

우리의 삶은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또는 무엇인가에 종속된 존재일 뿐이다.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 즉 노력하는 사람을 돕는다. 하나님은 자기 주도성과 주체성을 원하신다. 이것이 필자가 아는 하나님과 경전의 말씀이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ejleek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