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종성 미스바채플 목사

국내 역사갈등 환단고기 진위논쟁 아냐

주류사학계, 中日학계 추종하며 국제학계 인정받는다 호도

북경대 유학 리지린, ‘낙랑군요동설’로 중국에서 학문 권위 인정받아

민족사학자들을 제도권으로 진입시켜 역사학계 경쟁체제 구축해야

▲ 지난해 12월 12일 대통령이 기관별 업무보고를 받는 장면.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몇 가지를 질문하며 역사문제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며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역사갈등은 환단고기 진위논쟁이 아니다. 주류사학계의 기존 통설에 대한 지성인 시민사회의 집단적 거부로 촉발된 사태이다. 광복 후 친일청산 실패는 친일세력의 득세로 이어졌고 역사학계마저 그들에게 잠식당하는 결과를 빚게 되었다. 그 결과 조선총독부에서 체계화한 조선사(朝鮮史)의 학설이 아무런 여과 없이 대한민국 역사교과서에 고스란히 수록되었고, 이 틀은 한치의 시정도 없이 오늘날까지 소위 통설이라는 미명 하에 만고불변의 교리처럼 통용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한국사 침탈이 자심한 이때이지만 식민사관의 학풍이라는 족쇄가 채인 주류사학계는 '우리만 잘났다고 하면 국제학계로부터 인정 받을 수 없다'는 희한한 논리를 내세우면서, 중일 학자들이 자행하는 한국사에 대한 테러를 그대로 묵인한 체 오히려 그 주장을 뒷받침해 주기에 바쁘다. 일례로 중국학계가 백제의 대륙진출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논리를 펴면, 우리의 국책역사기관이 나서서 더욱 정밀하게 논리를 가공하여 맞장구를 쳐주는 식이다. 그러면서 마치 우리 학자들이 국제학계로부터 학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것처럼 국민들을 호도한다.

계명대 교수인 김백철은 자신의 저서에서 한중일 간 역사갈등이 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세나라 학자들 간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으며 오히려 우리 학자들이 중국과 일본에 가면 그곳의 학자들로부터 환대받기에 바쁘다고 자랑을 하고 있다. 서울대교수 송기호는 자신이 국가기관에 압력을 넣어 역사교과서에서 산동반도가 포함되었던 동이족의 분포지역 표시를 삭제했다며 본인의 저서에서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적시하고 있다. 부산대 명예교수인 백승충은 부산시사(釜山市史) 원고에서 낙랑군에 귀부하는 염사국을 무모하게도 경남 창원으로 비정하여 고대 차이나의 강역을 한반도 남부까지 끌고 오려는 중국의 의도에 동조해 주고 있다.

▲동이족의 분포지역이 현재 사용되는 역사교과서 우측지도에 삭제되어 있다. 송기호는 자신이 국가기관에 압력을 넣어 삭제했다고 기뻐하며 자신의 저서에서 밝혔다.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위가야는 예전 자신의 한 논문에서 가라국 하지왕이 남제(南齊)에 사신을 파견할 때 야마토왜의 배편에 꼽사리 끼어서 파견했을 거라는 식으로 주장을 하기도 했다. 6세기에 직조기술도 제대로 없었던 야마토왜가 도대체 무슨 재간으로 큰 선박을 만들어 바다를 항해할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인지, 그의 사관과 수준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몇해전 소위 학계에서 방귀 깨나 낀다는 학자들이 세미나를 개최하여 홍산문명은 우리민족과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그 누구라도 허튼소리 하지 말라는 식으로 연구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놓는 것도 보았다. 세계 석학들도 인정한 우리 민족의 시원문화인 홍산문명을 우리 스스로 배제하며 하루 아침에 우리의 전통문화를 중국문화의 아류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렇게 국내 학자들이 앞장서서 한국사의 시공간을 축소하고, 우리 고대왕조의 수준은 낮추고, 중국과 일본은 고대로부터 대단한 나라였던 것처럼 치켜 세워주니, 어찌 저들로부터 환대를 받지 않겠는가.

1960년대 북한의 리지린은 북경대에 유학 중 차이나의 옛 문헌들을 가지고 논(論)을 구성하여 낙랑군평양설을 뒤엎고 ‘요동설’을 구축했으며, 고조선의 중심지가 화북성과 요령성에 위치했음을 밝혔다. 당시 지도교수였던 중국학자 고힐강이 그의 학설을 반박할 근거를 찾지 못하여 논문을 통과시키고 박사학위를 주었다고 한다. 이런 식의 연구방법이야말로 국제학계로부터 진짜 인정받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우리네 주류사학계는 장장 100년 세월이 흐르도록 일제가 구축해 놓은 학설을 그대로 활용하여 그것을 하나의 정설로 삼고,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을 모르고 있다.

▲ 북한학자 리지린의 ‘고조선연구’에 나오는 서기전 5~4세기쯤의 고조선 강역. 지금의 하북성 난하까지 고조선의 강역으로 그리고 있다. 그의 지도교수였던 고힐강은 리지린이 고조선 관련 현존 자료의 95%를 읽었다고 했다. 고대 4사는 물론 ‘관자’(管子), ‘산해경’, ‘전국책’, ‘진서’, ‘구당서’, ‘수경주’ 등 수많은 중국 사료를 인용해 고조선과 한사군의 위치를 논증하였음으로 반박할 방법이 없었다.

시민사회는 이러한 주류사학계의 실태를 여러 경로를 통해서 확인하게 되었고, 중일의 역사침탈은 우리 학계의 통설의 허점을 파고 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함과 동시에, 문헌과도 맞지 않는 주장을 천연덕스럽게 읊어댄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 하여, 그들의 학설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주류사학계는 자신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고 이의를 달고 질문하는 이들을 향해 ‘유사-사이비’로 매도하기 급급하다. 이미 학자의 범주를 벗어나 만고불변의 교리를 가진 종교인처럼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교리화된 소위 통설은 단지 일선 학교에서 강제되고 있을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주류사학계의 역사관과 실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기에 얼마 전 부서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을 보고 ‘역사문제에 고심이 깊다’고 발언을 하며 분발을 촉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의 본의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주류사학계와 편향된 언론이 한통속이 되어 "환단고기 위서론"으로 사안의 본질을 흐리며 혹세무민하고 있다. 심지어 역사문제에 얼마나 무지했던지 친여성향의 유튜버들 조차 식민사관의 학풍을 계승한 학자를 불러다 놓고 대통령의 고심을 깔아뭉개는 실수를 범하고 있는 지경이다.

지성인 시민사회의 외침은 환단고기로 역사를 다시 써 달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시각으로 사료를 해석하고, 우리의 관점에서 논(論)을 구성하여 한국사의 체계를 다시 설정하여 외세의 역사침탈을 극복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식민사관의 학맥으로 똘똘 뭉쳐 학문권력을 쥐고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자들에게 스스로의 성찰과 개변을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므로 이제는 비상한 대책이 요구된다. 정부와 여야는 역사학계를 다양화하여 경쟁체제가 구축될 수 있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이 길만이 국내 역사갈등을 수습하는 첩경일 것이다. 그동안 민족사학계도 많이 성장한 상황이고, 연구성과도 나름 축적되어 있다. 민족사학자들과 그들의 연구성과들이 재야에 머물지 않고 제도권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제언하는 바 민족사학자들로 구성원이 채워진 "국립민족사박물관(國立民族史博物館)" 혹은 "국립국사연구센터"와 같은 국책역사기관을 세종시에 별도로 신설하여 주류사학계와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하루바삐 조성해야 한다. 이러한 경쟁체제는 주류사학계를 안주할 수 없도록 자극할 수 있고, 외세의 역사침탈을 극복 할 수 있는 대응논리를 정밀하게 구축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그동안 식민사관의 똥물을 먹고 자란 뉴라이트세력들도 일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다음은 서의식 교수(前서울대 역사교육학과)가 페북에 올린 ‘환단고기 논란의 본질’이라는 글이다. 핵심이 되는 요지만 발췌하여 소개한다. “이재명대통령은 강단의 국사학계가 이미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단정한 사실은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학자와 인사들이 여전히 이 결론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매우 의아해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하면서 “‘중국고구려’론은 우리의 국사 교과서가 반영하고 있는 이른바 ‘통설’의 허점을 파고든, 말하자면 우리 스스로 자초한 인식이었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교과서에는 신라를 비롯한 삼국이 고조선에서 나왔다는 역사인식이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런 (중국의) 도발적 질문에 정면 대응하기 위해 설치된 동북아역사재단으로서는 그 역점 사업을 삼국의 역사와 문화가 고조선의 그것을 계승한 형태임을 입증하는 데 맞추었어야 마땅했다”고 말하면서 “(외세의 역사침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자신의 역사인식체계를 재정립해 다시 세우는 것으로서만 가히 극복 가능한 논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대통령의 [환단고기] 언급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고조선사와 삼국사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는 작업에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묻고 점검한 내용이었던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환단고기]가 위서인가의 여부는 하나의 상징적 화두일 뿐 정면으로 논란 삼을 주제가 아니었다. 사로국 중심의 한국고대사 인식체계가 과연 사실에 기초한 것이고 논리적으로도 타당한가의 여부가 문제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고조선과 삼국 사이에 어떤 역사적 계승성과 문화적 계기성이 존재한다는 것인지 설득력있는 답을 내놓아야 할 의무가 동북아역사재단, 나아가 한국 고대사학계에 있었다”고 논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