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서도영(시상평론가)
강단사학의 실체, 흑백논리와 낙인찍기 전부
소련의 유엠부틴의 고조선 연구 역사진실 밝혀
중국사료로 식민사학 보다 훨씬 넓은 강역 고증
강단사학 이를 소화못하고 방어하기에 급급
고조선은 독자적 정치, 군사적 역량을 지닌 국가
강단사학, 제한된 사료와 특정한 시대 속에서
형성된 하나의 가설에 불과
▲그는 사료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조심스럽게 가설을 확장했고, 그 결과 도달한 고조선의 강역과 영향력은 한국 강단사학이 상정해 온 범위보다 훨씬 넓었다.
이른바 '환빠 논쟁'에 대해서 한마디 해보려 한다. 최근 이재명이 교육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닌가?”라고 질문한 발언이 알려지면서 한국 사회에서 다시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쟁이 불붙었다.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환단고기를 위서로 보는 견해가 사실상 정설에 가깝고, 그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해당 사안을 ‘논쟁거리’로 언급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야권과 학계 일부에서 제기되었다.
환단고기는 오래전부터 학문과 정치, 민족주의 감정이 뒤엉킨 채 반복적으로 소환되어 왔고, 이번 논란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다. 이 논쟁을 바라보며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먼저 분명히 밝혀둘 점이 있다. 나는 환단고기를 읽어본 적이 없다. 때문에 그 내용의 진위나 사료적 가치도 알 수 없고, 판단을 내릴 자격도 없다. 다만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쟁이 늘 감정적 대립과 낙인찍기로 흘러가고, 흑백논리처럼 어떠한 입장을 강요하는 풍토 자체가 과연 건강하게 학문을 할 수 있는 환경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나는 환단고기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고조선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주류 인식이 과연 유일한 정답인지 묻고 싶다.
내가 읽어본 책은 환단고기가 아니라, 소련 시기의 동방학자 유엠부틴(U.M 부틴, 유리 미하일로비치 부틴)이 쓴 고조선 연구서다. 이 책은 한국 강단사학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고조선 인식과는 분명히 다른 결을 보여주었다.
강단사학이 고조선을 한반도 북부와 요동 일부에 국한된 비교적 단명한 정치체로 설명해 온 데 반해, 유엠부틴은 중국 사서와 고고학 자료를 면밀히 대조하며 고조선을 동북아에서 결코 주변부가 아닌, 독자적 정치, 군사적 역량을 지닌 국가로 파악했다. 특히 연나라, 한나라와의 전쟁 기록을 해석하며 그러한 충돌을 감당할 수 있었던 고조선의 규모와 조직력은 강단사학의 축소된 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제시한다.
이 연구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주장 자체의 크기보다도 접근 방식이었다. 유엠부틴은 신화를 역사로 단정하지 않았고, 증명할 수 없는 연대를 단언하지도 않았다. 그는 사료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조심스럽게 가설을 확장했고, 그 결과 도달한 고조선의 강역과 영향력은 한국 강단사학이 상정해 온 범위보다 훨씬 넓었다. 한국과 조선, 중국의 연구들을 폭넓게 다루며 그 속에서 비교연구를 진행한 내용은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다시 말해, 환단고기에 대해 비판하는 부분인 민족주의적 열망이 아니라 사료 해석의 결과로 고조선이 커진 것이다. 부틴의 연구는 환단고기와는 전혀 다른 성격이지만, 그럼에도 강단사학의 축소된 고조선과는 분명히 충돌한다.
환단고기를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상고사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중국 중심의 사관이나 식민사관적 인식에 맞서려 한다는 점은 알고 있다.
그런 문제의식 자체를 조롱이나 낙인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는 학문적이라기보다 정치적이다. 더구나 한국 강단사학이 제시해 온 상고사 역시 확인된 진실이 아니라, 제한된 사료와 특정한 시대 속에서 형성된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가설이 지나치게 오래 고정되어 왔다. 그 결과 다른 가능성을 탐구하는 시도들까지 배제해 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유엠부틴의 책은 환단고기를 참고한 적이 없으며, 환단고기라는 단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연구는 결과적으로 강단사학보다 훨씬 넓은 고조선의 강역과 영향력을 제시한다.
외국 학자가 중국의 역사 사료들을 바탕으로 도출한 가설이 한국의 주류 역사 인식보다 더 개방적이고 입체적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고, 조금은 슬프다.
환단고기를 옹호하느냐 마느냐의 이분법을 넘어, 한국 사학계는 왜 이러한 외부 연구 성과조차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급급한지 묻게 된다.
상고사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닫힌 사고방식 속에서 미지의 영역을 다루는 한, 상고사에 대한 논쟁은 반복될 뿐이고 이해는 깊어지지 않을 것이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taehyun.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