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지정스님(경북 문경 봉천사 주지)
가야사 박물관들, 함녕 고녕가야 유령취급
삼국유사, 고녕가야 중심지 함녕이라 적시
신라 고녕가야점령하고 고릉현이라고 명명
고녕가야, 금관가야보다 수십년 더 존속
주류사학, 우리 사서 외면 중국 사서 더 신뢰
함창 고녕가야에 대한 기사는 공간적 시간적 개념에 있어서 5가야 중에서도 가장 구체적으로 남아 있다. 5가야 기사는 <삼국유사>에 수록하고 있으며 김해를 가야의 종주국 금관가야로 상정하여 6가야로 부르지만 사서에는 금관가야라는 명칭이 없다.
일연스님은 <삼국유사> ‘오가야조’에서 고려초기 금관주지사가 저술한 가락국기 찬문을 인용하여 5가야를 설명하고 있다. “구간이 구지산에 모여 구지가를 부르니 하늘에서 붉은 끈에 묶인 비단 주머니에 황금알 6개가 내려왔다.
그것을 구간의 집에 놓아두니 하루만에 부화되어 먼저 나온 주인공 이름은 ‘수로’라하며 금관성에 남고 나머지 다섯은 각기 가야의 주인이 되었다. 아라가야는 지금(고려)의 함안이요, 고녕가야는 지금의 함녕이요, 성산가야는 지금의 경산 혹은 벽진이요 소가야는 지금의 고성이다.”라고 적혀 있다.
<삼국유사>에서 함녕이 고녕가야의 본거지라고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금관가야 이름은 나오지 않으며 단지 6알 가운데 먼저 태어난 주인공 이름이 수로(首露)이며 이성(금관성)에 남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나머지 5가야는 함안, 함녕, 경산 혹은 벽진(오늘날 성주), 고령, 고성을 지목하고 있다. 즉 함안 아라가야, 함녕 고녕가야, 성주 성산가야, 고령 대가야, 고성 소가야를 일러서 5가야라 하고 금관가야를 더하여 6가야라고 칭한다.
<본조사략(本朝史略)>을 인용하여 창녕 비화가야를 언급하면서 이것은 잘못된 명칭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오늘날 가야사박물관에 가면 6가야 지도를 그리면서 함창 고녕가야를 제외하고 은근슬쩍 창녕 비화가야를 끼워 넣은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국민을 대단히 기만하는 행위다.
<삼국사기> ‘지리편’에서 주로 5가야 지역의 변천사를 설명하고 있다. 그중에서 고령 대가야와 함창 고녕가야부분을 각각 5줄씩 할애하면서 많은 기사를 싣고 있다. 나머지 성산가야와 아라가야, 소가야는 비교적 짧게 언급하고 있다.
함안의 아라가야를 설명하면서는 신라 법흥왕이 아시랑국을 멸하고 함안군을 세웠으며 아시랑국을 달리 아군가야라고 했다고 적고 있다. 성산가야는 본래 일리군에서 출발하고 소가야는 본래 고자군에서 비롯되었다고 간단하게 설명하면서 가야라는 일반명칭은 쓰지 않았다.
반면 함녕 고녕가야는 지명의 변천사를 신라 이전부터 언급하고 있으며 그에 딸린 속현의 지명변천사도 상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지명을 21세기 지금도 쓰고 있으니 삼국사기 내용은 가이 신뢰할만하다고 할 수 있다. 대가야 경우는 시조(始祖) 이진아시왕부터 마지막 도설지왕까지 16대 520년까지 왕조를 중심으로 다섯 줄을 기록했다.
“고녕군은 본래 고녕가야국에서 시작되었다. 신라가 이를 멸하고 고동람군으로 하였으니 달리 고릉현이라고도 했다. 신라 경덕왕이 개명을 했으며 고려 인종시에는 함녕군이라 부른다. 함녕군에 딸린 현이 셋 있으니 먼저 가선현은 본래 가해현이었는데 경덕왕이 개명을 했으며 인종 때에는 가은현이라 불렀다. 다음은 관산현이니 원래 관현이라 불렀으며 관문현이라고도 불렀다. 경덕왕 때 개명을 했으며 인종 때는 문경현이 되었다. 다음은 호계현이니 본래 호측현이었는데 경덕왕때에 개명을 했으며 지금도 그대로 호계현이라 한다.”
여기서 고녕군 지명을 명시하면서 본래 시작은 고녕가야국이라고 적시했다. 이렇게 <삼국사기> ‘지리편’에서 가야를 적시한 곳은 함녕 고녕가야와 고령 대가야 두 곳 뿐이다. 함녕 고녕가야는 신라의 침범과 멸함을 기록하고 국(國)에서 군(郡)으로 강등시켰다는 기록과 옛무덤을 나타내는 고릉(古陵)이라는 지명을 덧붙이고 있다. 행정단위인 현(縣)을 조합하여 고동람군(古冬攬郡)을 달리 고릉현(古陵縣)이라 했다고 변천사를 나타내고 있다.
경덕왕이 개명을 해서 고녕군으로 지칭하다가 지금(고려 인종)은 함녕군이라 부른다고 했다. 즉 고녕군이라는 이름은 신라 경덕왕 때 최초로 한자이름으로 표기했으며 광종 때 함녕군으로 바꾸어서 인종 때에도 여전히 함녕군이라 부른다고 했다. 이것이 이후 현종에 이르러서 다시 함창으로 바뀐다.
당시 함녕군에 속한 현이 셋이 있었으니 가은, 문경, 호계라고 하면서 이들의 지명변천사도 설명한다. 특이한 것은 고려 인종때 쓰이던 그 지명이 지금까지 쓰고 있으니 기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속현 가운데 제일 먼저 소개한 곳이 가은현이다. 가은현(加恩縣)은 본래 관현 또는 관문현이라 하다가 경덕왕 때 가선현으로 바꾸었으며 고려 인종때는 가은현이라 불렀다.
그후 7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은이라는 고유명사는 이어지면 현이 읍(邑)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구산선문 중 하나인 봉암사 태고선원이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희양산에 있다. 그 다음 속현이 문경현(聞慶縣)인데 문경현은 본래 관현 또는 관문현으로 부르다가 경덕왕 때 관산현으로 바뀌었다. 인종 때 문경현으로 불렀으며 21세기 지금은 문경읍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문경시로 확장되었다.
세 번째 소개한 곳이 호계현으로 호계는 필자가 거주하는 봉천사가 있는 면 소재지이다. 호계현(虎溪縣)은 본래 호측현이라고 불렀으며 경덕왕 때 호계현으로 바뀌었는데 인종때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호계지명은 건재하며 행정단위 현이 면(面)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특히 호계지명은 경덕왕(재위742~765)때부터 쓰였으니 장장 1200년 이상을 사용하고 있는 이름이다.
이토록 <삼국사기> ‘지리편’은 우리지역의 지명변천사 뿐 아니라 신라와의 관계까지 설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의 거두라고 불리는 학자가 함창 고녕가야를 지우고 진주 고녕가야를 주장했으니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신라가 고녕가야를 점령하고 나서 고릉현이라고 했으니 고릉(古陵)이 바로 태조 고로왕릉과 왕비릉이 아니겠는가! 태조 고로왕릉 표지석이 조선시대 선조 임금 때 땅속에서 발견된 후 숙종 때 왕명으로 보수하고 석물을 정비했다고 한다.
가야왕과 왕비릉이 적시되어 남아있는 곳은 김해의 수로왕릉, 허왕후릉이 있고 함창의 고로왕릉, 고로왕비릉이 있을 뿐이다. 박천수 경북대학교 박물관장의 말을 빌리자면 고로왕의 DNA를 확인한 것도 아닌데 전하는 기록이나 구전만으로 어떻게 고로왕릉이라 확신할 수 있느냐고 한다.
김태식의 주장은 한발 더 나아가서 함창 김씨문중에서 수천 년 제사를 지내건 말건 그것이 어떻게 역사가 될 수 있느냐고 말한다. 심지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이 정확한 역사라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도 한다.
한국 사학자들이 한국의 양대 사서를 제껴 두고 중국이나 일본 사서를 우선한다는 것도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양대 사서와 거기에 해당하는 시조왕릉과 왕비릉이 있고 그들을 제사지내는 수만 명의 후손이 있는데 믿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중국의 만리장성이 진시황이 지시해서 쌓은성이라고 확정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진시황의 목소리를 들은 바도 없고 당시 성을 쌓는 모습을 본 사람도 없고 사마천의 <사기>가 그때의 사실을 그대로 기록했다는 증거는 더더욱 없지 않는가?
<삼국유사>에서 오가야는 금관가야 김수로왕과 허왕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삼국사기>나 <동국여지승람>에서 가야는 고령 대가야 정견모주를 필두로 시조 이진아시왕부터 16대 도설지왕까지 520년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고령의 대가야는 금관가야 구형왕이 신라에 항복한 것보다 수십 년을 더 존속했다. 고령과 합천, 성주의 진산이 가야산이며 가야산신은 정견모주로서 해인사 국사당에 모셔져 있다. 금관가야 허왕후는 인도에서 파사석탑과 장유스님을 대동하고 불교를 들여왔다. 함창의 고로왕릉에서 300여미터 떨어진 곳에 예부터 전해오는 선돌이 있다.
어느 때 김씨 성을 지닌 사람의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바닥을 파보라고 해서 이튿날 괭이로 파보니 선돌 밑둥에 새겨진 부처님의 발가락이 나타났다. 그 선돌은 단순한 선돌이 아니라 부처님이었다.
오봉산 아래 용담정이라는 우물이 있고 우물 옆에는 시대를 알 수 없는 불상과 탑이 있었는데 언젠가 사라졌다고 한다. 오봉산 고분군 아래 성혈석이 있고 그 앞에 신비한 우물과 절터가 있으니 어쩌면 함녕고녕 가야불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지정스님: 문경 봉천사 주지, 상주문경함창 고녕가야선양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