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승종(전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구 선교사들, 동양은 낙후된 미개한 세계
기독교를 통해 동물숭배 신화에서 벗어나야
김교신, 천박한 상업주의 기독교 극복 노력
미국 기독교 모방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봐
▲ 김교신
김교신의 꿈 - 한국적 기독교
김교신은 한국적 기독교를 가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를 중심으로 형성된 <<성서조선>> 그룹의 신념이 그러했다. 그들은 서구 교단으로부터 한국 기독교가 분리 독립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그들의 일본인 스승 우치무라 간조의 가르침과 통하는 확신이었다.
알다시피 19세기 말에 서구 열강은 한반도에서 ‘오리엔탈리즘’을 토대로 한 선교 정책을 폈다. 그러나 ‘동양’ 세계에 대한 서구열강의 편견은 부당한 것이었다. 유럽과 미국의 선교사들은 동양을 이질적이고 낙후된, 미개한 세계라고 믿었다. 동양의 일부인 한국은 제 역사를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로 보였다는 말이다.
가령 <<은둔의 나라 조선>> 을 저술한 미국인 선교사 그리피스(W. E. Griffis)만 해도 그러하였다. 그는 조선의 역사를 평하기를, “그들의 역사라는 것은 하나의 민담 거리에 불과하며,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민족적 허영심과 동물숭배의 신화를 바탕으로 전통적이고 지역적인 가치의 차원에서 쓴 연대기”일 뿐이라고 했다.
한국 역사는 근대적 의미의 역사라는 범주에 속할 리 없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그리피스는 20세기 초까지도 한국 사회는 서구의 기독교 근대문명을 통해 극복되어야 할 ‘고대’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와같이 교만한 서구중심주의는 한국인의 역사적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정하였다.
김교신은 바로 그와 같은 오리엔탈리즘에 맞섰다. 그는 우리가 미국식 기독교회를 모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서구우월주의에 빠진 서양선교사들의 견해를, 우리가 비판 없이 수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였다.
김교신이 확신하는 기독교의 진리란 무엇인가. 그는 형식적 교리, 교회조직 또는 예배의 절차에 진리가 깃들어 있다고 믿지 않았다.
진리는 인간의 주체를 확립하면서도 상대화하는 하나님이란 존재를 믿고, 그에 대한 신앙을 ‘하향적 아가페’의 행위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신앙의 진리는 시공간에 따라 각기 다른 형식을 선택한다.’ 이것이 김교신의 신념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기독교는 한국인의 감성과 기호와 역사의식을 반영하여 한국적 형식을 구축해야 한다.’ 반드시 그렇게 하는 것이 한국 기독교인의 사명이다. 김교신의 생각은 그와 같았다.
그때도 미국식 신앙은 ‘천박한 상업주의’에 오염된 상태였으므로, 김교신은 미국식 신앙을 단호히 거부하였다.
그는 “은밀히 덕을 쌓고 은밀히 보는 하나님에게 보답받기를 기다리”는 한국의 전통사상인 유교의 ‘은덕(隱德)’을 중시하였다.
김교신의 판단에 따르면, 우리는 정복자를 꿈꾸는 서구적 인간상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자신이 “선을 행하지는 못할지라도 선을 행하는 것이 도(道)라는 점을 알았고, 또 선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함을 두려워할 줄 알았”던 조선 선비의 ‘위선’을 그리워하는 편이 도리어 옳다고 했다.
21세기 한국 교회의 실상을 바라보면 약 100년 전 김교신이 쏟아낸 미국 교회에 대한 비판이 정말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식 천박한 상업주의에 오염되어, 모리배 또는 장사꾼이 활개 치는 오늘의 한국 기독교계는 난장판이 아니고 무엇인가.
돈과 특권을 제공하면 악마와도 기꺼이 손을 잡겠다는, 그런 비굴하고 추악한 교회 지도자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여기에도 정녕 그리스도의 구원이 있을까?
백승종, <자율적 근대를 향한 김교신의 고뇌>, <<김교신, 한국 사회의 길을 묻다>>(홍성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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