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종성 (지방분권포럼 대표)

▲유종성(지방분권포럼대표)
▲유종성(지방분권포럼대표)

 

 

치우는 맥족의 시조, 중국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치우의 구려국은 확실한 동이족 국가

치우는 우리의 먼 시조였음이 증명

 

고조선과 그 후신인 진국(삼한), 부여는 넓은 의미에서 모두 맥족에서 기원했다. <한서> 고제기(高帝紀) 「북맥(北貊)」 조항에 "맥족은 동북방에 살고 있는데 삼한의 무리가 다 맥족의 종류"라고 한다.

맥족의 시조는 치우(蚩尤)였다. <주례>에는 "사냥할 때 군신(軍神)에게 바치는 제사가 맥제(貊祭)”인데, 후한(後漢)의 대학자 정현(鄭玄)은 맥제에 대하여 주석 하면서 "맥제의 제사 지내는 대상은 군신(軍神) 치우"라고 했다. 맥족의 영웅 치우는 중국인들까지도 전쟁의 신, 승리의 신으로 알려져 오래도록 숭배되었던 것이다.

▲ 중국 화북성 탁록에 있는 중화삼조당에 그려진 탁록전투도. 황제무리와 치열하게 싸웠던 동이의 천자 치우를 중국공산당은 마치 중국의 조상인 것처럼 둔갑시키고 있다.
▲ 중국 화북성 탁록에 있는 중화삼조당에 그려진 탁록전투도. 황제무리와 치열하게 싸웠던 동이의 천자 치우를 중국공산당은 마치 중국의 조상인 것처럼 둔갑시키고 있다.

황하유역을 석권한 황제(黃帝)가 탁록(현 화북성 장가구있는 현)의 들에서 치우와 충돌했다고 하는걸 보면 치우세력의 본거지는 그 건너편의 난하, 대릉하 유역이였을 터이다. 우리 겨레의 시원문화인 ‘홍산문명’이 만개하던 바로 그 지역이다.

그런데 응소는 <사기집해> 오제본기에서 말하길 “치우는 옛 천자(天子)”라고 한다. 이것을 통해 치우는 천손족(天孫族)을 자임하고 동방을 제패하여 천자로 군림한 것을 보여준다.

​공안국은 <사기색은> 오제본기에서 말하길 “구려(九黎)의 군주를 치우라 부른다"라고 하면서

‘구려’라는 나라 이름(혹은 족명)을 알려준다. 심백강의 연구에 의하면 구려는 "밝다" "환하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노사> 국명기(國名紀)에서 "여(黎)는 하나라 제후인 구려(九黎)이다. 두예는 말하기를, ‘동이(東夷) 국가이다’"라고 하였다. 천자였던 치우가 하(夏)나라 제후일 순 없으니 중국인들의 허망한 춘추필법의 덧칠에 불과하다. 여기서 주목되는건 치우의 구려국이 동이족의 국가였다는 사실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한국축구대표팀 응원단인 ‘붉은악마’는 치우천자가 그려진 엠블럼을 들고 나왔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한국축구대표팀 응원단인 ‘붉은악마’는 치우천자가 그려진 엠블럼을 들고 나왔다.

당(唐)의 장수절은 <사기정의>에서 주(註)를 달면서 ‘용어하도(龍魚河圖)’와 ‘산해경(山海經)’을 인용하여 치우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 두 책이 기록한 내용을 종합해 보면 치우의 특징은 첫째, 몸은 짐승인데 말을 했다고 한다. 이것은 황제족의 관점에서 볼 때 치우가 이민족이고 언어가 달랐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 81인의 형제가 있었다고 한다. 치우 세력은 크고 작은 부족을 형제적 질서로 조직하였으니, 그중에 치우는 대수장으로써 ‘가장 큰 형’이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후대 맥족이 주축이 되어 건국된 고구려에서 ‘형(兄)’ ‘대형(大兄 큰형)’ ‘태대형(太大兄 더큰형)’과 같은 관등이 있었다 전하는데 치우 집단과 높은 상관성을 보여준다.

셋째, 병장기를 무섭게 잘 쓰고 용감무쌍한 무신(武神)과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치우'와 고구려 시조 '추모'는 그 이름이 음상사로도 비슷하거니와 추모(주몽) 이름은 ‘활을 잘쏘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무적(武的) 능력의 소유자인 치우와도 의미가 통한다.

<설문해자주>에서 '추'는 '주루'라고 쓰기도 하며 동이족의 말이라고 소개된다. 그런데 고구려 제3대 대무신왕의 이칭이 '대해주류왕'이라고 하는 바, 한자 말 '무신(武神)'에 대응하는 고구려 말이 '주류'였음을 알게 한다. 주류는 '주루>추'로도 표기될 수 있는 말이었고 '무신(武神)' 치우를 의미하는 것이다. 고구려에서 치우는 여전히 자신들의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었던 것이다.

넷째, 치우가 풍백과 우사를 거느렸다는 <산해경(山海經)>의 기록도 치우가 이미 환웅(桓雄) 이전에 동이를 이끌던 대수장이었음을 전하는 내용이다. <사기정의> 오제본기에서 “황제는 응룡(應龍)에게 명하여 치우를 공격하도록 하였다. 치우는 풍백(風伯)·우사(雨師)에게 청하여 따르도록 하면서 큰 바람과 비를 내렸다."고 한다.

​풍백은 수명과 질병을 관장하고, 우사는 곡식을 주관하였다. 환웅이 거느린 형벌을 관장하는 운사(雲師)가 빠져 있는걸 보면 치우 때는 형제적 질서로의 대등 관계에 머물러 강제력까지는 아직 행사하지 못하는 사회 단계였던 셈이다. 환웅 단계에 이르러 법에 따라 물리적 강제력이 행사되는 사회로 발전한다.

▲ 신라 고구려 백제치우 이야기는 환웅보다 앞선 시기의 맥족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고, 환웅의 예족과 치우의 맥족이 거의 유사한 정치조직을 가져 문화를 공유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맥족(예맥.한[韓])의 후예라고 한다면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장 먼 윗 선조는 치우이다.
▲ 신라 고구려 백제치우 이야기는 환웅보다 앞선 시기의 맥족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고, 환웅의 예족과 치우의 맥족이 거의 유사한 정치조직을 가져 문화를 공유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맥족(예맥.한[韓])의 후예라고 한다면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장 먼 윗 선조는 치우이다.

우리 겨레는 요서의 홍산문명을 기반으로 역사시대를 시작하여 구려의 천자 치우시대를 거쳐 환웅의 신시(神市)와 단군(壇君)의 고조선으로 이어졌으며 고조선의 동천(東遷)으로 진국(삼한).부여로 흐름이 이어졌던 것이다.

​심백강, 서의식 학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