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락(문화평론가)
최후를 맞이한 체게바라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 연상시켜
혁명가 면모 외에 인간애와 자유로운 영혼으로 누비며 살아
미국 비롯한 서방자본주의에는 타도해야 할 원흉으로 각인
젊은이들에게 저항과 투쟁 상징, 지식인 예술인에는 흠모대상
▲ 체게바라의 시신. 눈을 뜨고 죽었다.
<체 게바라>
죽은 그의 사진은 예수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피에타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스라이 슬픈 표정에 눈을 뜬 채 죽은 얼굴에서 그리스도교의 대표적인 성화인 Ecce Homo(이 사람을 보라!)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남미의 중산층에서 태어나 의사로서 유복한 삶을 포기했던 그는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곳은 물론 아프리카까지 전전하면서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무력투쟁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는 투쟁의 원인이자 목적이었던 민중들의 배신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오히려 라틴 아메리카에서 반미, 반자본주의, 사회주의 운동을 독려하였다.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는 현재도 이러한 정치적인 갈등과 이에 동반한 경제적인 고난을 겪고 있다.
그는 20세기의 가장 아름다운 남성으로써 기억되고 있다. 잘 생긴 외모에 기인한 것이지만, 민중에 대한 헌신 그리고 인간애로서 그는 아름다운 존재가 되었다.
그는 사실상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다. 정글 속에서 게릴라전을 수행하면서도 그는 가족들에게 애정 어린 편지를 쓰고 시를 창작해냈고, 자본주의의 스포츠라고 여겼던 골프를 즐겼고, 시가를 입에 물고 살았다.
자유인으로서의 면모는 냉전시대 와중에도 친자본주의 진영에서 극단적인 호불호를 불러일으켰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자본주의 정치권에서는 타도할 원흉이었지만, 장 폴 샤르트르나 존 레논과 같은 지식인이나 예술인들 사이에서는 찬양과 흠모의 대상이었다.
그의 얼굴은 사후에 저항의 아이콘처럼 젊은 세대들에게 인식되었다. 미국의 반전운동이나 유럽에서 나타난 68운동에서 게바라는 순교자로 나아가 스타로 비추어졌다.
미국의 무정부적인 운동의 핵심을 이루었던 히피들도 게바라처럼 군복차림에 덥수룩한 수염을 길렀으며, 그의 삶을 추앙하였다.
이후에는 티셔츠나 길거리 벽화에서 드물지 않게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